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과 퍼스트리퍼블릭은행(FRC) 뱅크런 위기 와중에 유럽 유수의 크레디트스위스(CS)까지 파산 위기에 몰려 스위스중앙은행이 500억스위스프랑(약 70조원)의 긴급 지원에 나섰다. 불과 열흘 새 벌어진 일이다. 미국 14위 중소은행인 FRC는 정부를 대신해 뱅크오브아메리카 씨티 JP모간체이스 등 11개 민간은행이 300억달러(약 39조원)를 지원해 일단 위기를 넘겼다. 사태의 진전을 지켜볼 일이지만, 이것만으로도 유례가 없는 위기 대응 방식이다.
SVB 사태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처음 보는 위기였다. 대표적 안전자산으로 손꼽히는 미국 국채가 이 은행 파산의 주된 요인이었다. 부실한 기업대출, 불황기에 연체가 쌓이는 가계대출, 경제 불량 국가의 공공채와 외환 같은 전통적 부실채권이 아니라 최고 우량 자산인 미국 국채가 금리인상기에 가격이 떨어지면서 위기의 뇌관이 될 줄 누가 알았겠나. 사전 경보가 없었을뿐더러 설령 경고 메시지가 나왔다고 해도 쉽게 주목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지금 목도하는 국제 금융시장의 이변과 출렁거림은 급작스러운 고금리의 심각한 부작용에 다름 아니다. 풀린 돈을 회수하고 살인적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한 금리 인상은 불가피하지만 문제점도 만만찮은 것이다. 한국은 고환율 대처까지 큰 과제이니 금리 올리기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우리가 유념해야 할 점은 고금리 처방에 따른 중소·영세기업의 어려움이나 가계 이자 부담 증가와 그로 인한 소비·내수 위축 정도만 보면서 정책을 펼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만큼 한국은행과 거시경제를 운용하는 기획재정부의 대처 역량이 더욱 중요해졌다. 미국은 그래도 SVB 예금 인출에 따른 대응이 기민했다. 대처 방식도 새로운 위기 양상에 대응하는 맞춤형 처방이었다. ‘휴대폰(디지털) 뱅크런’으로 예금이 순식간에 빠져나가자 일요일인 지난 12일 중앙은행(Fed)과 연방예금보험공사가 비상회의를 열어 ‘즉각 폐쇄와 예금 전액 보장’을 결정했다. FRC 구제금융도 재무부 요청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자 장사’로 성급한 임금·퇴직금 파티를 즐긴 우물 안 국내 은행들은 이번 사태를 어떻게 보고 있나. 금융당국은 이런 유형의 ‘블랙스완’에서 무엇을 배우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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