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이후 숨어 있던 마약 밀매상들이 보름 전부터 활동을 재개했습니다.”
마약 도매상 A씨는 17일 서울 강북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기자를 만나 이렇게 말했다. 그는 “역대 정부 중 윤석열 정부의 마약 단속 수위가 제일 높다”며 “큰손들의 활동이 뜸해지니까 공급이 줄고 가격이 비싸졌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달 초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그는 “수사기관에 걸려 죽나 굶어 죽나 마찬가지라는 얘기를 많이 한다”며 “전면전 양상의 생존 게임이 벌어지는 분위기”라고 했다.
한국경제신문은 경찰 측에 취재 의사를 밝힌 뒤 마약상 A씨를 어렵게 수소문해 동행 취재했다. 마약은 ‘피자 배달’처럼 일상 속에 깊숙이 침투해 있었다. A씨는 경력 20년의 중간 관리자급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1주일 취급량은 필로폰 약 50g. 그는 “1g짜리 주사기를 ‘한 작대기’라 부르고 여기에 필로폰 가루를 넣어 판다”고 했다. 주사기를 쓰는 이유는 정량 확인이 쉽기 때문. 한 작대기의 시세는 약 50만원인데, 1회 투약량이 0.075~0.08g임을 감안하면 13~14회 투약이 가능한 분량이다. 1회 가격이 3만8500원꼴인 셈이다. 10년 전만 해도 최소 수십만원은 줘야 했던 가격이 웬만한 피자 한 판 값 정도로 떨어진 것이다. A씨는 “단골 중엔 약사, 의사 같은 고소득 전문직이 많았는데 요즘엔 학생도 꽤 늘었다”고 했다.
국내 유통되는 필로폰은 전량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등에서 밀수한다. 이를 시장에 푸는 큰손은 크게 네 조직. A씨는 “대구에서 활동하는 그룹이 현역 중 최장수 마약왕”이라며 “조직들은 밀수량을 협의해 수시로 가격을 조절한다”고 귀띔했다.
A씨가 물건을 받는 윗선은 10곳 정도다. 그로부터 물건을 받는 하위 유통상은 약 50명. 네 개의 큰손을 정점으로 다단계 피라미드 조직처럼 아래로 퍼져나가는 유통 구조다. A씨의 경우 한 봉지를 할인받아 130만원에 사 250만원 안팎에 넘긴다. 이익률이 90%쯤 되는 셈이다.
최종 소비자와는 대부분 1 대 1 거래를 통해 유통한다. 보안을 위해서다. A씨는 “이미 서로 신뢰 관계가 있는 사람들과만 거래한다”며 “새 손님은 대부분 거래 경험자를 통해 소개받는다”고 말했다.
정부 단속이 강력해지면서 지난해 하반기부터는 저질 마약 유통도 늘고 있다는 게 그의 전언이다. ‘멍’이라 부르는 불량품이다. 정품은 ‘술’로 불린다. “필로폰도 일종의 화학 물질이기 때문에 제조 과정에서 불량품도 생깁니다. 그만큼 시장이 커졌다는 것이죠.”
A씨는 최근 10년이 마약이 대중화된 결정적 시기라고 했다. 다크웹 등 온라인 소통 채널이 발달하면서 호기심에 마약을 찾는 사람이 늘었다는 것이다. 접선 장소도 달라졌다. 약 15년 전엔 주로 유동 인구가 많은 강남 호텔에서 마약 거래가 이뤄졌었다. 하지만 요새는 마약이 보편화되다 보니 전국 어디서나 서로 편한 곳에서 접선한다는 설명이다.
A씨는 “온라인 거래는 누구나 접근이 가능하지만 그만큼 경찰도 쉽게 단속한다”며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시세도 더 비싼 편”이라고 말했다. 온라인에선 필로폰 가격이 직거래보다 40% 이상 비싼 g당 70만~80만원 선이다. A씨는 “현 정부가 마약 전쟁을 시작한 이후 온라인 거래는 무조건 잡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했다. 경찰청 마약조직범죄수사과 관계자는 “마약 근절을 수사의 최우선 순위로 정했다”고 말했다.
조철오 기자 che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