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말 흥선대원군은 최악의 인플레이션을 만들어냈다. 경복궁을 다시 짓는 돈을 대느라 '당백전'이라는 화폐를 새로 발행했는데, 1866년 쌀 한 섬에 7~8냥 하던 게 2년 후 여섯 배나 폭등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렇다면 그보다 앞서 수원 화성을 건설한 정조는 어떻게 재원을 감당했을까? 대한제국 시기 외국 차관 도입, 철도 부설, 탄광 개발, 무기 수입 등 근대화 정책에 필요한 물자를 도입할 때 지급 보증은 무엇이었을까?
한국사에 관한 이 같은 질문에 답을 찾을 때마다 등장하는 주인공이 있다. 바로 '고려인삼'이다.
최근 출간된 <작지만 큰 한국사, 인삼>은 고려인삼이라는 렌즈로 한국사를 들여다보는 책이다. 저자는 조선 후기를 연구해온 한국사학자 이철성 건양대 교수다. 충남 논산에 있는 건양대 총장을 지낸 그는 지역 연구의 일환으로 인삼문화 연구를 시작해 개성, 금산 등지의 자료를 모으고 연구해왔다.
인삼 판매량이 예전 같지 않은 시대, 책은 인삼이랑 친해지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1장은 산삼이 인삼이던 시절에(재배 없이 채취만 가능하던) 형성된 생활 속 인삼 이야기를 담았다.
한국사 주요 사건과 인물을 인삼을 통해 살펴보는 건 2장부터다. 2~3장은 인삼이 동아시아 무역 네트워크 속으로 들어가는 시기를 담았다. 4~5장은 개항 이후 조선의 홍삼 무역과 근대 서양이 본 고려인삼에 대한 이야기를, 6~7장은 일제강점기 인삼산업과 식민지 조선에서 고려인삼이 갖는 상징성을 다뤘다. 8장은 광복 이후 고려인삼 전매제가 민영화로 이행되는 과정을 분석한다.
풍부한 자료조사와 세밀한 서술이 읽는 맛을 더한다. 예컨대 조선시대 인삼의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이런 장면을 통해 생생하게 그려낸다. 17~18세기 일본에서는 '나이 어린 여인이 조선 인삼을 사서 제 아버지의 난치병을 고치기 위해 유곽에서 몸을 팔았다'는 이야기가 만담, 연극 등을 통해 퍼져나갔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 인삼에 대한 입소문이 났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아예 인삼 전용 은화도 등장했다. '인삼대왕고은'이라는 순도 80%의 특수 은화였다. 일본 내에서 통용되는 은화의 순도가 30% 안팎이었던 걸 감안하면, 일본 사람들이 조선 인삼을 손에 넣기 위해 얼마나 혈안이 됐는지 알 법하다. <성호사설>을 지은 이익은 "일본인의 풍속에 병이 생기면 반드시 인삼을 쓰니, 만약 무역을 막으면 죽을 각오로 다투어 사단이 일어날 것이기에 어쩔 수 없이 교역을 허락했다"고 했다.
이 책을 흥미롭게 읽었다면 또다른 '작지만 큰 한국사' 책도 함께 읽어볼 만하다. 동일한 출판사에서 2012년 출간된 <작지만 큰 한국사, 소금>이다. 소금을 키워드로 한국 문화사를 맛깔나게 풀어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