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곳곳에서 입주지연이 발생하고 있다. 소송이 마무리 되지 않거나 공사를 두고 발생한 갈등 등이 주요 요인이다. 일반분양을 통해 공급을 받은 입주 예정자들은 속이 탄다. 조합이 일을 제대로 해결하지 않아 발생한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서울 대부분의 아파트는 조합이 있는 재건축이나 재개발을 통해 공급된다. 이러한 입주지연 사태는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라는 게 업계의 전망이다.
공사비 문제로 입주지연…일반분양 받은 입주민들 "조합이 너무해"
신월4구역 재건축인 서울 양천구 '신목동 파라곤'(299가구)은 공사비 분담 문제를 두고 시공사인 동양건설산업과 조합이 갈등을 빚고 있다. 동양건설산업이 원자잿값 상승 등을 이유로 공사비 약 100억원 증액을 조합에 추가로 요구했지만, 조합이 이를 거부했다. 시공사가 유치권을 행사하면서 아파트 입구를 컨테이너와 차량 등으로 가로막고 있다. 신목동 파라곤은 일반분양 당시 평균청약경쟁률이 146대 1에 달했다. 분양가가 주변시세 대비 3억~4억원가량 낮은데다 공급이 드물었던 서울에서 나오면서 '로또 아파트'로 주목을 받았다. 전용 59㎡의 경우 분양가(약 5억2000만원) 보다 2억원 이상 뛴 7억5000만원에 매물이 나와있다. 하지만 당시 인기와 시세와는 별개로 아파트의 입주예정자 채팅방에는 '전입신고도 할 수 없어 아이들 전학이 취소됐다'거나 '대출이 막혔다'는 얘기를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김씨는 "잔금 준비만 잘 하면 길었던 내 집 마련의 여정이 끝날 줄 알았다"며 "입주가 너무 늦어져서 일반 수분양자들과 '조합을 상대로 소송을 진행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이건 로또가 당첨돼도 돈을 찾을 수 없는 상황이나 다름없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신목동 파라곤처럼 입주를 시작못한 아파트가 있는 한편, 입주 도중에 막힌 아파트도 있다. 지난달 말부터 입주를 시작한 서울 강남구 개포동 '개포자이 프레지던스'(개포주공 4단지 재건축)다. 소송으로 전날부터 입주가 중단됐다. 입주가 불가능한 상태인 '열쇠 불출'이 안될 수 있다는 소식이 지난 11일부터 문자로 알려지기 시작했고, 이에 주말동안 입주예정자가 입주지원센터에 몰리면서 북새통을 이뤘다. 수억원대의 잔금을 구한 가구는 그나마 낫지만 주말이 끼는 바람에 처리를 못한 집들은 꼼짝없이 오갈데가 없는 처지가 됐다.
개포자이 프레지던스 조합과 경기유치원의 갈등은 하루이틀 일이 아니었다. 2020년 경기유치원 측은 "재건축 전 단독필지였던 유치원을 조합이 관리처분계획을 수립하면서 3375가구의 아파트 소유자들과 공유하는 공유필지로 처리하려고 했다"고 주장하면서 조합과 강남구청을 상대로 관리처분계획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유치원 운영에 차질은 물론 재산권을 침해당할 상황에 놓였다는 취지다.
법원은 지난 1월 13일 유치원 측의 손을 들어주면서 조합이 2019년 12월 23일 강남구청장으로부터 변경인가를 받은 관리처분계획을 취소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다시말해 적법한 관리처분계획이 다시 마련되지 않고는 준공인가 처분이 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입주기간 중에 '날벼락'…3년 끌어온 소송 결론은 '아직'
그럼에도 강남구청은 지난 2월 28일 부분 준공인가처분을 내려 일부 입주가 시작됐다. 이에 3월 6일 서울행정법원이 '준공인가처분 효력정지'결정을 내렸다. 강남구청은 지난 10일 늦은 오후에 조합에 입주 중지 이행명령을 내렸고, 시공사인 GS건설은 13일부터 열쇠 불출 중지 입장을 밝히면서 이번 입주대란이 벌어진 것이다. 예비 입주자들이 모인 단체채팅방에는 각종 하소연들이 쏟아지고 있다. "이사날짜 다 잡고 집도 빼야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 "이런 식이면 각종 소송 때문에 재건축 자체가 힘들어지게 됐다", "입주민들이 주로 이용할 유치원인데 입주민들을 볼모로 잡는 건 너무한 거 아니냐", "건축비부터 교구비까지 조합이 보담하고 면적도 넓게 지어줬는데, 유치원은 설립신청도 안했는데 너무하다" 등의 의견이 이어지고 있다.
법원은 17일 예정됐던 변론기일을 15일로 앞당겼다. 오는 24일까지 개포자이 단지 내 유치원 관련 소송의 결정을 내릴 예정이다. 부분 준공인가 처분 효력을 오는 24일까지 정지하면서 열쇠불출은 안되는 상태다.
개포자이 프레지던스에는 현재까지 1000여가구가 입주를 마쳤다. 오는 24일까지 입주를 예정한 가구는 200여가구가량 남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아파트 역시 2019년 12월 분양당시 '로또'로 불리면 평균경쟁률 65대 1을 기록했다. 전용 84㎡의 분양가가 15억7000만원가량이었는데, 최근 거래된 분양권 가격은 25억원이었다.
최근 입주 지연이나 중단, 혹은 공사 지역이나 중단 등이 벌어지고 있는 아파트는 주로 '서울'에 집중되고 있다. 주요한 갈등원인은 '공사비'다. 시공사는 공사비 인상을 요구하는데 비해 조합은 이를 거부하고 있다. 갈등을 겪으면서 평행선을 달리다가 공사를 중단하거나 입주불가를 통지하고 있다. 한 때 공사중단을 겪었다가 현재는 잔여가구를 분양중인 올림픽파크포레온(둔촌주공)이 대표적인 사례다.
서울에서 진행되는 정비사업은 일반 시행사나 디벨로퍼가 보다는 조합이 추진하는 사업 비중이 높다. 때문에 공사비 증액과 같은 주요 안건에 조합원의 의견을 수렴하는데 시간이 소요되곤 한다. 일반분양도 끝난 마당에 조합원들은 추가적으로 비용을 부담하자는 결정을 쉽게 따르기 어려운 처지다. 그나마 집값이 상승기라면 '시세차익'을 기대해 비용부담에 나서겠지만, 최근에는 부동산 시장이 침체되다보니 이 마저도 어렵다는 게 관련업계에서의 공통적인 설명이다.
시공사와 '공사비 갈등' 서울 곳곳에서 발생
재개발을 주로 하는 A법무법인 변호사는 "조합이 사업중에 겪는 갈등이나 문제에 대해 쉽게 생각하거나 해결하는데 미숙한 측면이 있다"며 "최근에는 조합임원들의 임기가 있다보니 '내 임기에 섣불리 결론을 냈다가 문제가 생기겠다' 싶으면 결정을 미루면서 다음 조합장에 떠넘기기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합사업은 금융비용이라는 게 있기 때문에 결정을 안하고 미루다보면 되레 비용이 늘어난다"며 "법률적인 자문을 사업초기부터 꾸준히 가져가는 게 좋다"고 덧붙였다.한편 서울에서 조합과 시공사가 공사비로 갈등을 겪는 사례는 꾸준히 나오고 있다. 입주 2개월을 앞둔 서울 강남구 대치동 '대치푸르지오 써밋'도 이러한 경우다. 대우건설은 작년 말부터 조합에 관리처분계획·도급계약 변경을 통해 공사비 670억원 증액을 요구했으나, 조합 측이 협의에 성실히 응하지 않으면서 '입주가 제한될 수 있다'는 공문을 보냈다.
GS건설과 현대건설이 시공하는 마포구 '마포자이힐스테이트'(공덕1구역)은 공사비 인상 문제로 착공도 못하다가 최근들어 공사비 인상에 합의했다. DL이앤씨와 서초동 신동아아파트 재건축 조합도 공사비 인상 문제를 두고 협의 중이다.
김하나 한경닷컴 기자 ha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