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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연락안돼" 물었다고 '직장 괴롭힘'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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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A씨는 업무시간에 연락이 되지 않는 후임에게 “연락이 왜 안 되냐”고 문자를 한 번 보내고 전화 한 통을 했다가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당했다. 후임은 회사에 “A가 나를 감시하는 것 같았다”고 했다. B씨는 신입사원에게 업무 분장을 했다가 “동의 없는 일방적 업무 떠넘기기는 괴롭힘”이라는 이유로 신고당했다. 조사 결과 B씨 건은 ‘문제없다’는 결론이 났다.

2019년 7월 시행된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개정 근로기준법)’이 한국의 권위적 직장 문화를 바로잡는 역할을 했지만 그에 못지않게 억울하게 신고를 당했다는 지적도 상당한 것으로 파악됐다. 모호한 규정 때문에 허위·과장 신고가 많아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직장 내 괴롭힘 신고, 기소율은 0.7%
12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19년 7월 이후 2022년 말까지 직장 내 괴롭힘으로 접수된 신고 건수는 2만3541건이었다. 시행 첫해 6개월간 2130건에서 2020년 5823건, 2021년 7774건으로 늘었고 지난해에도 7814건이 신고됐다. 지난해 기준으로 하루 21.4건이 신고됐다.

하지만 전체 2만3541건의 신고 중 고용부 ‘개선 지도’는 2877건(12.2%), ‘검찰 송치’는 415건(1.7%)에 그쳤다. 검찰 송치 사건 중 ‘기소’ 건수는 165건(0.7%)에 불과하다. 정부에서 ‘문제가 있다’고 보는 신고는 14% 정도다. 반면 ‘취하’는 8927건(37.9%)에 달했고 ‘법 위반 없음’ 6438건(27.3%)을 포함한 ‘기타’가 1만1265건(47.8%)이었다.

일각에선 낮은 기소율 등을 두고 “정부가 적극적으로 단속하지 않은 탓”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현장에선 ‘괴롭힘으로 단정하기 어려운 사례가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직장 내 괴롭힘’의 정의가 불분명하고 허위신고 제재가 없다 보니 규정을 악용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노동조합 소속의 한 변호사는 공공기관 징계위원회 위원으로 직장 내 괴롭힘 조사를 맡았다가 신고자로부터 “발령 난 부서에 가기 싫어서 사이가 안 좋던 부서장을 신고했다”는 진술을 받았다. 그런데도 신고자는 기피 부서에 가지 않게 됐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괴롭힘 피해를 신고한 자’에게 ‘인사 불이익’을 줘선 안 된다는 규정 때문이다. ‘직장 내 괴롭힘’ 신고자를 보호하기 위한 규정이 기피 부서 발령을 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된 것이다.

서울과 광주에 지사를 둔 모 기업에선 서울지사 직원들이 돌아가며 광주로 발령이 난다. 하지만 한 직원이 자기 차례에서 “광주 발령은 괴롭힘”이라고 문제 삼아 결국 다른 직원이 대신 내려가게 됐다.

직장 내 괴롭힘 신고가 회사 내 갈등을 부추기기도 한다. 노무법인 시선의 김승현 대표노무사는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한 동료를 맞신고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라며 “회사가 직원과 모종의 거래를 해 특정 직원에 대한 허위신고를 사주하는 사례도 있다”고 했다.

허위 신고로 치러야 하는 비용도 적지 않다. 직장 내 괴롭힘의 경우 사건 특성상 회사 자체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따라서 로펌, 노무법인 등 외부 전문가를 불러야 할 때가 많아 비용 부담이 크다.
객관적 기준, 허위신고 제재 없어
서유정 한국직업능력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해 ‘직장 내 괴롭힘의 허위 신고 실태와 과제’ 보고서에서 “괴롭힘 처벌 조항을 보유한 국가(한국, 프랑스, 노르웨이, 호주, 루마니아, 버뮤다 등) 중 한국만 유일하게 객관적인 기준이 없다”고 지적했다.

한국은 괴롭힘에 대해 ‘지위·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라고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직장 내 괴롭힘’을 평가할 때 ‘지속성’이나 ‘반복성’을 따지는 다른 나라와 달리 한국은 ‘주관적 해석’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허위 신고에 대한 제재 규정이 없는 점도 신고 남발을 부추긴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강분 행복한일 노무법인 노무사는 “어떤 행동이 직장 내 괴롭힘이 아닌 것으로 판명 난 것과 허위신고는 구분해야 한다”면서도 “유럽연합(EU)은 허위로 괴롭힘 신고를 할 경우 제재한다는 게 노사 간 컨센서스(동의)”라고 말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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