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인공지능(AI)이 구현한 창작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가운데, 세계적인 명작으로 꼽히는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의 모작이 미술관에 전시돼 논란이 일고 있다.
12일(현지시간) AFP 등에 따르면 해당 그림은 네덜란드 헤이그의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에 전시됐다. 이 미술관은 전시를 위해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원작 그림을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에 대여했는데, 그간 이를 대체할 모작을 공모하는 이벤트를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모작은 독일 베를린에서 크리에이터로 활동하는 율리안 판디컨의 작품이다. 그는 미술관이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작품 이벤트를 연다'는 소식을 듣고 AI로 작업한 그림인 '빛나는 귀고리를 한 소녀'를 출품한 것으로 전해졌다.
판디컨은 이미지 생성 AI '미드저니'에 원작 이미지를 넣고 자신의 구상을 프롬프트(명령어)로 입력했다고 한다. 미드저니는 텍스트를 입력하거나 이미지 파일을 삽입하면 AI가 자동으로 그림을 생성해주는데, 사실적인 묘사와 추상적 표현을 구현해내는 등 예술적인 작업에 특화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원작 이미지 수백만 개를 데이터로 삼았다고 한다. 이후 이미지 편집 프로그램인 어도비의 포토샵을 활용해 작품을 완성했다. 그 결과, AI 작품은 원작보다 얼굴이 좀 더 갸름한 형태에 진주 귀걸이는 조명처럼 주황빛으로 붉게 빛나는 모습을 내놨다.
미술관은 이 작품을 포함, 이벤트에 출품된 30482점 중에서 170여점을 원작이 있던 전시실에 디지털 형식으로 전시했다. 특히 판디컨이 제출한 작품을 포함한 5점은 인쇄해 미술관 벽에 내걸었다.
이에 네덜란드 예술계에서는 '원작자는 물론 예술가들에게 모욕적 결과'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 작가는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AI 작품을 전시한 것은) 베르메르의 유산은 물론, 현재 활동 중인 예술가들에 대한 모욕"이라며 "미술관에서 나오면서 뺨을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보리스 더뮈닉 미술관 공보 담당은 "예술이 무엇인지는 매우 어려운 질문이다"라면서도 "AI가 창작한 것임을 알고도 마음에 들어 하는 이들이 있다. 이 작품은 (충분히) 멋진 그림이고, 창조적인 과정에서 나온 결과물이라는 게 우리의 의견"이라고 설명했다.
김세린 한경닷컴 기자 celi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