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 기획 과정에 관심을 갖는 소비자들이 늘어나면서 제품·서비스 개발과 유통 전반에서 디자인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 과거에 제품 패키징(포장) 수준에만 머물렀던 디자이너의 활동 범위가 서비스 기획과 제작,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영역까지 넓어지는 모습이다. 디자인적 사고를 통해 사회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하는 사회적기업들도 주목받고 있다.
재활용 제품에 '디자인' 쓰는 기업들
9일 한국디자인진흥원에 따르면 섬유패널 회사인 세진플러스는 최근 반려동물 가구의 시제품을 제작했다. 세진플러스는 의류공장 등에서 폐섬유를 수집해 소재를 개발하는 회사다. 그동안 소재 개발에만 집중해 상대적으로 디자인 역량이 부족했지만 디자인진흥원의 전문가 자문으로 직접 디자인 제품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세진플러스 관계자는 "여러 분야의 전문가 의견을 반영해 제품군 확장을 시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세진플러스는 의류상품 재활용을 위해 면, 폴리, 기타 섬유 3가지로 의류를 나눠 배출할 수 있는 시스템을 기획해 업계의 주목을 받은 곳이다. 회사 관계자는 "자체 섬유제품이 반려동물 가구에 알맞다고 생각해 반려동물 가구를 새롭게 기획했다"고 말했다.
사회적기업인 프래그스튜디오는 버려진 플라스틱을 활용한 제품을 만드는 회사다. 그동안 OEM으로 진행했던 기존 방식에서 최근 ODM 방식까지 서비스를 확장했다. 이건희 프래그스튜디오 대표는 "먼저 제품을 개발한 다음 고객들에게 제안하는 ODM 방식의 생산 시스템을 갖추게 됐다"며 "디자인 전문가가 개발한 디지털 아카이브를 보고 고객이 직접 상품을 선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프래그스튜디오는 다양하게 활용이 가능한 플라스틱 중간재를 판매한다. 시민들이 직접 모아온 병뚜껑을 색깔별로 분류한 후 분쇄기를 이용해 직접 소재화하는 등의 작업도 진행 중이다.
디자인진흥원, '사회적기업 디자인사업' 진행
그동안 디자이너들은 주로 제품의 모양과 기능을 개선하는 데 집중해왔다. 하지만 최근 소비자들이 자신이 소비하는 제품과 서비스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디자이너들의 역할이 더 커지고 있다. 제품의 가치를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목적으로 디자인이 널리 활용되면서다. 기업들은 과거 제품 개발 마지막 단계에 참여해 제품의 패키지와 외형을 만드는 데 그쳤던 디자이너들을 제품 기획과 생산 전반에 참여시키기 시작했다. 디자인적 사고를 통해 사회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하는 사회적기업들도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디자인이 사회적기업들의 이른바 '선한 영향력'을 소비자에게 알리는 데 역할을 하면서다.
디자인진흥원은 '사회적기업 디자인사업'을 통해 기업들에 디자인 컨설팅부터 디자이너 인건비 등을 지원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총 186곳의 사회적기업이 이 사업의 혜택을 받았다.
디자인 컨설팅 지원사업은 10년 이상의 서비스디자인 실무 경험을 지닌 전문 컨설턴트를 기업과 연결해 맞춤 디자인 컨설팅을 제공한다. 디자이너 고용이 필요한 기업에 디자이너를 연결해주고 인건비를 지원하는 디자이너 지원 사업도 있다. 비즈니스모델 개발 지원 사업은 서비스 디자인을 통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드는 데 필요한 비용을 최대 1억원까지 지원한다.
윤상흠 디자인진흥원장은 "디자인은 사회적 제품과 서비스를 고객 니즈에 맞게 고도화해 사회적 가치 실현을 위한 다양한 시도들을 비즈니스 성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혁신 수단"이라며 "사회적 가치 실현의 주축인 사회적 경제조직이 디자인을 통해 성장할 수 있도록 더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