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현장에서 타워크레인 작업이 필요한 경우, 시공사, 또는 시공사에게 그 작업을 하도급 받은 하도급사는 타워크레인 회사 (타워크레인을 보유하고 기사를 고용)와 임대차계약을 체결하는 방법으로 그 작업을 수행한다. 이 때 시공사 등이 공사현장에 배치된 타워크레인 기사에게 성과급 등 명목으로 직접 지급하는 돈이 월례비다. 법상 정의된 용어는 아니고, 현장에서 관행적으로 그렇게 쓰인다.
대통령 신년사에서 노동개혁의 중요성이 강조된 이래 정부는 노동현장의 불법적 관행을 근절하겠다는 의지를 지속적으로 밝히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월례비 지급은 근절되어야 하는 대표적 관행으로 부각되고 있다. 지난달 21일 범정부 건설현장 불법·부당행위 근절대책에서 월례비 수취시 형법상 강요·협박·공갈죄를 적용하겠다고 선언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위 근절대책 발표 직전인 지난달 16일, 미묘한 시기에 월례비에 관한 중요한 판결이 나왔다. 광주고등법원이 하도급사가 기사들을 상대로 월례비 반환을 구한 사건에서 하도급사 패소 판결을 내린 것이다 (광주고등법원 2023. 2. 16. 선고 2021나22465 판결. 이하 대상 판결). 역시 하도급사 패소로 결론이 난 1심 판결 (2019가합59979)과 결론은 같지만, 판결 중 월례비가 “사실상 근로의 대가인 임금”이라고 설시한 점이 최근 정부의 월례비 관행에 대한 입장과 대비되면서 많은 화제를 모았다.
여러 정황상 앞으로 한동안은 우리 사회에서 월례비 관련 공방이 이어질 것인바, 대상 판결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아래 중요 사항을 정리해 본다.
◆월례비는 임금이 아닌 '증여된 돈'
대상 판결 중 월례비를 “사실상 근로의 대가인 임금”이라고 판단한 부분의 문장을 보면 “하청업체인 철근콘크리트 업체의 타워크레인 기사들에 대한 월례비 지급은 수십 년간 지속되어 온 관행으로서, 타워 크레인 기사들에게 월례비는 사실상 근로의 대가인 임금의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라고 돼있다.
이를 두고 일부 언론 등은 법원이 월례비의 임금성을 인정했다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위 문장은 그렇게 새길 수 없다. '타워크레인 기사들에게' '사실상' 근로의 대가인 임금의 '성격'을 가진 것처럼 인식되었으니, 그런 주관적 인식을 존중한다는 정도의 취지로 봄이 맞다.
위 문장의 바로 앞에는, 하도급사와 기사들 사이에 '월례비 상당의 돈을 증여하기로 하는 내용의 묵시적인 계약이 성립하였고', 기사들은 이에 따라 하도급사로부터 월례비를 지급 받은 것이라는 문장이 나온다. 이 문장은 위 해석을 뒷받침한다. 즉, 월례비는 묵시적 증여계약에 의하여 지급된 돈이다. 근로계약에 의하여 지급된 돈, 임금이 아닌 것이다.
1심도 월례비는 임금이 아니라는 판단이었다. "하도급사가 사실상 사용종속관계에 있거나 파견 관계에 있는 기사들에게 근로를 지시하고 사용자의 지위에서 임금을 지급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기사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그 이유로는 기사들은 '타워크레인 회사로부터' 임금을 지급 받았다는 점 등을 들었다.
◆월례비 지급 강제 인정되면 반환청구 허용될 수도
1심은 대상 판결과 달리 하도급사와 기사들 사이에는 월례비 지급에 대한 계약이 없다고 보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도급사가 월례비 반환을 요구할 수 없다고 했다. 채무 없음을 알면서도 변제하면 반환청구를 못하게 하는 민법상 비채변제 법리에 따른 것이다. (민법 742조 “채무 없음을 알고 이를 변제한 때에는 그 반환을 청구하지 못한다”). 1심은 하도급사가 채무 없음을 알았고, 월례비 지급이 하도급사의 자유로운 의사에 반하여 이루어졌다는 사정이 없으니 이 법리가 적용된다고 보았다.
대상 판결 취지도 유사하다. 사실 대상 판결에서는 월례비 지급에 관한 묵시적인 계약이 성립했다고 판단했으니 비채변제 법리 적용을 더 따질 필요가 없다. 그러나 그런 계약이 성립하지 않았더라도 비채변제 법리에 따라 하도급사는 월례비 반환청구를 못한다는 가정적 판단을 굳이 더하고 있다. 월례비 지급 의무가 없음을 알고서도 관행에 따라 지급했으니 자유로운 의사에 반하여 부득이하게 지급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중 빗장을 건 셈이다.
단, 대상 판결은 그 전체 취지상, 실제 작업 거부나 지급 강제가 있었다면 하도급사가 월례비에 관한 묵시적 계약을 부정하고, 더 나아가 비채변제가 아니라고 주장할 길을 완전히 배제한 것은 아니다. 이 문제는 사안별로 정해질 것이다. 따라서 어떤 하도급사가 지급을 강제 당했다는 등의 사정을 입증한다면, 대상 판결 취지에 따르더라도 그 하도급사가 월례비 반환을 청구할 길은 여전히 열려있다.
◆월례비 지급 관행은 지양해야
대상판결은 월례비 지급의 합의가 있었다고 인정하고, 하도급사가 입찰 참가시 월례비를 반영하여 견적금액을 정하였으니 하도급사는 시공사와 월례비를 스스로 부담한다고 합의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월례비 지급 관행이 바람직하다는 가치판단을 한 것은 아니다. 주어진 사실관계에서는 하도급사의 반환청구를 인정할 수 없다는 법리 판단을 한 것일 뿐이다.
월례비 지급이 바람직한지에 관한 판단은 1심 판결에서 볼 수 있다. 1심은 대상판결과 마찬가지로 하도급사의 반환청구를 부정하면서도, “타워크레인 기사들에 대한 월례비 지급은 근절되어야 할 관행”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①타워크레인 회사 등이 부담할 인건비를 하도급사에 합리적인 이유 없이 전가하는 측면이 있는 점, ②공사현장이 위치한 지역의 관행 등 업무성과와 무관한 요소에 의해 지급 액수가 결정되는 점, ③기사가 지정한 자를 일용 근로자로 임금을 지급한 것처럼 회계처리를 하는 등 허위의 회계처리가 이루어지고 소득세 탈루 등 불법적인 결과가 발생하는 점이 그러한 판단의 근거다. 이러한 지적은 한참 월례비 관행 폐지가 쟁점이 되는 지금 새겨 들을 점이 있어 보인다.
조상욱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노동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