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동 트럼프월드 2차 아파트 앞 현대오일뱅크 주유소는 지난해 문을 닫았다. 여의도 대표 주유소 중 하나인 이곳은 주유소를 밀고 지하 7층~지상 29층 규모의 오피스텔을 건설하고 있다. 앞서 서교동 청기와주유소, 청담동 오천주유소 등 서울 대표 주유소도 문을 닫고 오피스텔로 변신 중이다. 쌓여가는 적자를 감당하지 못해서다.
서울 밖 상황은 더 심각하다. 주유소 줄폐업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폐업한 경기 파주시의 한 업주는 “토지 정화 비용 등 폐업 비용만 1억원 넘게 든다”며 “폐업하는 곳은 상황이 나은 곳”이라고 토로했다. 전체의 80%에 달하는 주유소가 문을 닫을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작년에만 234곳 폐업
6일 한국석유관리원에 따르면 전국 주유소 수는 지난해 12월 말 1만1144곳으로, 전년 동월(1만1378곳)에 비해 234곳 줄었다. 하루 이틀에 한 곳꼴로 폐업한 것이다. 2017~2022년 연평균 173곳의 주유소가 간판을 내렸다. 5~6년 새 주유소 숫자가 1만 곳을 밑돌 전망이다. 주유소들은 폐업하는 과정에서 기름 탱크 등 토지 정화 비용으로만 1억~5억원이 들어간다. 폐업 비용 부담에 눌려 폐업 대신 휴업을 선택하는 주유소도 적잖다.주유소 폐업이 이어지는 것은 수익성이 나빠진 탓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주유소 영업이익률은 2.52%로 일반 도소매업(4.06%)을 크게 밑돌았다. 주유소의 평균 영업이익은 2019년 기준 2600만원에 불과했다. 동네 식당이나 모텔보다 수입이 적다.
최근 주유소 수익성은 더 악화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한국주유소협회 관계자는 “최근 통계자료는 없지만 내부 추산으로 지난해 영업이익률이 0~1%대로 내려간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0~1%대 평균 영업이익률은 사실상 적자를 보는 곳이 부지기수라는 의미다.
실적이 나빠진 배경으로는 고유가 영향 등이 꼽힌다. 코로나19 직후 기름값이 뜀박질해 1원이라도 싼 주유소로 손님이 몰리는 경향이 심해졌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주유소들은 ‘제 살 깎기’식으로 가격을 인하했다. 여기에 알뜰주유소 확산으로 경쟁 강도는 더 세졌다. 알뜰주유소는 일반 주유소보다 휘발유 기준 L당 30~40원 저렴한 편이다.
도매가 공개…“주유소 더 팍팍해져”
전기차·수소차 전환 속도가 빨라진 것도 직격탄으로 작용했다. 정부는 친환경차 보급 대수를 지난해 136만 대에서 2030년 785만 대로 늘릴 계획이다. 그만큼 주유소 위기는 가속화할 전망이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주유소가 2030년까지 2053곳, 2040년까지 8529곳이 퇴출될 것으로 내다봤다.최근 정부 방침대로 정유사의 휘발유·경유 도매가가 공개되면 주유소 실적은 더 나빠질 전망이다. 시행령 개정안의 핵심은 전국 평균 휘발유·경유 도매가를 광역시·도 단위로 세분화해 공개하는 것이다. 이 경우 지역별로 가격 경쟁이 불붙으면서 주유소의 출혈경쟁은 한층 격화될 것이란 분석이다.
경영난을 타개하기 위해 주유소에 전기차 충전소 등을 추가하는 등 ‘친환경 에너지 슈퍼스테이션’ 전환을 꾀하는 곳도 늘고 있다. 하지만 규제와 비용 부담으로 이마저도 쉽지 않다. 현행 위험물안전관리법은 주유소 주유기와 전기차 충전설비가 6m 이상 떨어지도록 규정하고 있다. 주유소 부지 규모를 고려할 때 충전기를 설치할 수 있는 주유소가 많지 않다는 평가다.
김정훈 경기대 경제학부 교수는 “대부분 주유소는 전기차 충전기 설치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만큼 보조금 지원 등 정책 유인이 필요하다”며 “저수익 주유소의 질서 있는 퇴진을 위해 폐업 지원책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