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도 30년 전까지는 한국과 똑같이 우유 가격을 통제하는 정책을 펼쳤어요. 만약 지금까지 가격 통제가 이어졌다면 이탈리아 낙농업은 절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지 못했을 겁니다.”
마씨모 포리노 이탈리아낙농협회(Assolatte·아쏠라떼) 사무국장은 지난달 2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치즈, 버터 등 ‘메이드 인 이태리(Made in Italy)’ 유제품이 세계 최고 브랜드로 발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우유 가격의 시장 자율화 정책”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아쏠라떼는 작년 말 기준 248개 기업이 소속된 이탈리아 낙농업계의 최대 이익단체로, 이탈리아 전체 낙농업 매출의 90%가 아쏠라떼 소속 기업에서 발생한다.
포리노 사무국장은 “이탈리아는 1990년대 초까지 주별 위원회들이 지역 농장의 이익을 대변해 원유(原乳) 가격을 일방적으로 결정했다”며 “시장 원리를 무시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이탈리아 낙농업이 발전하는 데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고 말했다. 우유의 질에 비해 가격이 높게 책정돼 이탈리아 유제품이 시장에서 외면받는 등의 부작용이 있었다는 것이다.
한국은 그동안 원유 가격을 낙농가의 원유 생산비 증가분에 연동해 인상하는 제도를 유지해왔다. 형식적으로는 원유 생산자와 유업계가 협상을 거쳐 가격을 낮출 수도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매년 가격이 올라 ‘한국산 우유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우유’라는 지적까지 나온다.
올해부터는 농가의 생산비용만을 고려해 원유 가격을 정하던 기존 '원유가격 연동제'를 완화해 생산비용과 함께 시장상황도 반영해 가격을 정하되, 음용유와 가공유의 가격을 다르게 인상하는 '용도별 차등가격제'가 도입됐다. 하지만 원유 가격이 시장에서 결정되지 않고 낙농가와 유업계가 협의해 원유 가격을 결정하는 구조는 그대로다.
이에 대해 포리노 사무국장은 “이탈리아도 우유 가격을 자율화하기 위해 기존 제도를 폐지하는 과정에서 농가의 엄청난 저항이 있었다”라면서도 “시장에 맡기지 않으면 이탈리아 낙농업이 더 이상 살아남을 수 없다는 공감대 속에 기존 제도가 위법하다는 법원의 판결까지 받아 1993년 가격이 완전 자율화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마침 유럽 국가들을 하나의 공동시장으로 묶은 ‘마스트리흐트 조약’이 1993년 발효돼 이탈리아 유제품이 넓은 시장으로 제약 없이 뻗어나갈 환경까지 조성됐다”며 “넓은 시장과 자유로운 경쟁을 바탕으로 이탈리아 낙농업은 지난 30년 동안 세계 최고로 발전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아쏠라떼에 따르면 이탈리아 낙농업 수출의 약 90%를 차지하는 치즈의 수출량은 2021년 53만5000t으로, 우유 가격이 자율화되기 전인 1991년 8만9000t의 6배에 달하는 규모로 성장했다.
밀라노=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