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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공 아닌 신뢰를 판 것…74년째 1위 지킨 비결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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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보다 수성(守成)이 어렵다고 했다. ‘반짝 인기’로 치고 올라간 브랜드는 많지만, 1위 자리를 오랫동안 지키는 브랜드는 드물다. 쟁쟁한 도전자를 언제나 물리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요즘 같은 무한경쟁 시대엔 더욱 그렇다. ‘넘사벽’이던 GM이나 소니가 한순간에 2등 브랜드가 된 것처럼.

골프공 시장에서의 타이틀리스트는 그런 점에서 ‘별종’이다. 1949년 US오픈에서 처음 ‘참가 선수 사용률 1위’ 타이틀을 따낸 뒤 지금까지 74년간 단 한 번도 1위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오히려 세월이 흐르면서 점유율은 74%(지난해 세계 프로투어 사용률)로 높아졌다. 범위를 아마추어 골퍼로 넓혀도 1등은 달라지지 않는다. 시장의 절반은 타이틀리스트 몫이다. 작년 골프공 매출만 6억7880만달러(약 8800억원)에 달했다.

이런 타이틀리스트의 골프공 사업을 이끄는 메리 루 본 아쿠쉬네트 사장을 지난주 서울 강남에서 만났다. 본 사장은 “소비자들은 사야 할 이유가 없는 곳엔 지갑을 열지 않는다”며 “타이틀리스트가 오랜 기간 선택받았다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 이유를 타이틀리스트가 수십 년간 보여준 ‘신뢰’로 꼽았다.

움직일 공간이 없는 ‘좁은 링’에서 싸워야 하는 골프공 산업의 특성을 고려할 때 타이틀리스트의 높은 점유율은 미스터리에 가깝다. 골프 규칙을 만드는 미국골프협회(USGA)와 영국골프협회(R&A)가 공의 성능을 제한하는 규제를 잔뜩 만들어 놓은 탓에 혁신이 나오기 힘든 분야인데도 특정 브랜드 쏠림 현상이 심해서다. 예를 들면 공인구 직경은 42.67㎜, 무게는 45.93g 이내여야 한다. 속도는 섭씨 23.8도에서 초당 250피트 이하(2% 오차범위 허용)를 유지해야 한다.

본 사장은 “(워낙 규제가 많은 탓에) 많은 아마추어 골퍼가 경쟁사와 타이틀리스트 공의 차이를 눈으로 확인하지 못할 수 있다”며 “그래서 상당수 아마추어 골퍼가 (값이 저렴한) 다른 브랜드로 갈아타지만, 대부분은 (골프와 골프공을 알아가면서) 다시 타이틀리스트로 돌아온다”고 했다.

타이틀리스트는 아마추어 골퍼도 쉽게 알아챌 수 있도록 제품의 우수성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려고 노력해왔다. 1932년에 업계 최초로 공을 ‘엑스레이’로 찍어 속살을 보여줬고, 1940년대에는 타이틀리스트 공을 사용하는 투어 프로 수를 세는 ‘볼 카운트’ 마케팅을 펼쳤다. 타이틀리스트는 지금도 공을 포장하기 전에 엑스레이로 전수 검사해 불량품은 폐기한다. 볼 카운트 마케팅도 80년 넘게 진행하고 있다.

본 사장은 “타이틀리스트의 성능은 누가 쓰느냐만 봐도 알 수 있다”며 “세계랭킹 2위 스코티 셰플러(27·미국)를 비롯해 저스틴 토머스(30·미국), 임성재(27), 김주형(21) 등이 캐디백에 타이틀리스트 공을 넣고 다닌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마케팅을 전공하고 1987년 아쿠쉬네트에 입사한 본 사장은 여러 부서를 돌며 ‘타이틀리스트 맨’이 됐다. 1994년부터는 30년 가까이 브랜드 광고를 담당했다. 이 시기에 아쿠쉬네트에 합류한 ‘퍼터 명장’ 스카티 캐머런과 ‘웨지 장인’ 밥 보키의 브랜딩을 맡았다. 2000년 출시하자마자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한 ‘프로V1·V1x’도 그의 손을 거쳤다. 본 사장은 “캐머런과 보키는 이미 기술에선 ‘명장’ 반열에 오른 인물”이라며 “나와 우리 팀이 한 건 이들의 스토리를 소개하고 홈페이지를 만들어준 정도가 전부”라고 몸을 낮췄다.

2016년부터는 골프볼 부문 사장에 선임되며 세계 골프공 산업을 이끄는 리더가 됐다. 본 사장은 “한국처럼 실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열정적으로 연구하는 아마추어 골퍼가 많은 나라도 없다”며 “이번에 내놓은 신제품(2023년형 프로V1·V1x)에 대한 한국 골퍼들의 평가를 귀담아듣고, 개선할 점이 있다면 고칠 것”이라고 말했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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