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미분양 주택이 10년2개월 만에 최대치로 늘면서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시험대에 올랐다. 대출·청약 등 부동산 관련 규제를 전방위로 풀었지만 미분양 주택 증가세가 꺾이지 않고 있어서다. 올해 미분양 주택 10만 가구 돌파가 예상되는데도 분양가는 고공행진하는 모습이다. 건설자재뿐 아니라 인건비까지 급등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분양 주택과 분양가가 동시에 치솟는 ‘이상한 동거 현상’이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미분양 급증하는데 공사비 치솟아
28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 1월 전국에서 미분양 주택 증가율이 가장 높은 지역은 전북이다. 지난해 12월 2520가구에 그쳤던 전북의 미분양 주택은 올 1월엔 무려 62.1% 늘어난 4086가구에 달했다. 익산 등에서 건설회사들이 할인 분양에 나서고 입주를 앞둔 단지에선 분양가보다 1000만~2000만원 낮은 매물이 속출하고 있지만 매수자를 찾지 못하고 있다. 충북(4374가구)과 강원(3556가구)의 올 1월 미분양 주택 증가율(전월 대비)은 각각 35.6%, 34.3%로 전북의 뒤를 이었다. 인천(3209가구)과 경북(9221가구)의 미분양 주택 증가율도 각각 28.7%, 20.2%로 높았다.업계에선 ‘1·3 대책’ 이후에도 미분양 증가세가 꺾이지 않은 상황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 정부는 지난 1월 서울 강남3구와 용산구를 제외한 전 지역의 청약·대출·전매제한 등의 규제를 제거하며 미분양 해소를 기대했다. 하지만 규제 완화에도 오히려 미분양은 더욱 늘고 있다. 한 정책 연구기관 관계자는 “주택 수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부분은 금리”라며 “대출·분양 규제 완화 등의 카드는 얼어붙은 주택 시장을 되살리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추가 카드’ 없으면 미분양 10만 가구
전국 미분양 주택 급증에도 정부는 아직 개입할 수준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올 들어 미분양 주택이 늘어난 곳을 보면 외곽이거나 분양가가 인근 시세보다 높은 곳이 대다수라는 판단에서다. 정부는 분양가 하향 조정을 강조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최근 2~3년 새 건설자재가 품목별로 최대 50% 넘게 오른 데다 인건비 상승세가 가팔라 공사비가 천정부지로 뛰고 있어서다.고장력 철근의 경우 2020년 t당 61만5000원이었지만 올 2월엔 100만5000원으로 올랐다. 건축용 형강도 3년 새 51.31% 상승해 t당 115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건설자재 못지않게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인건비 역시 크게 뛰었다. 대한건설협회에 따르면 올 상반기 건설업 임금은 하루 25만5426원으로 나타났다. 2021년 상반기(23만798원)에 비해 10.67%(2만4628원) 뛰었다. 거푸집 작업을 하는 형틀목공의 경우 지난해 초에는 하루 일당이 20만원대 초중반이었으나 올해는 30만원에도 인력 확보가 어렵다는 게 현장의 설명이다.
국토부는 이날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받는 공공택지와 규제지역(강남3구·용산구) 아파트의 분양가 산정에 활용되는 ‘기본형 건축비’를 2.05% 올렸다. 최근 인건비와 자재값 상승을 반영해 6개월 만에 인상했다.
전문가들은 미분양 주택과 아파트 분양가격이 함께 오르는 기현상이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수도권 규제 완화의 유탄을 맞은 지방의 미분양 상황은 추가 조치가 없으면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규제 완화 이후 서울 지역에선 미분양이 발생해도 결국 소화되는 분위기인데 지방은 분양가 부담, 분양가 차익 기대 감소 등으로 청약 시장 자체가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며 “당분간 미분양 주택 순증으로 연내 10만 가구 돌파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