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렁했다. 예물을 맞추기 위해 발품을 파는 예비 신혼부부 모습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봄철 결혼 성수기를 앞둔 22일 서울 봉익동 종로 귀금속 거리는 한산했다. 이곳에서 인구 감소는 신문에서나 접하는 먼 소식이 아니었다. 10년 새 혼인율이 반토막 난 탓에 귀금속 거리를 찾는 20~30대의 발걸음은 끊기다시피 했다.
예물 주얼리 산업이 혼인율 급감의 직격탄을 맞았다. 시장조사업체 월곡주얼리산업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예물 주얼리 시장 규모는 전년 대비 25.9% 감소한 8197억원으로 조사됐다. 통계를 쓰기 시작한 2010년 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10년 전인 2012년(1조6049억원)과 비교하면 반토막이 났다.
예물 주얼리 시장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다이아몬드 시장의 위축이 두드러졌다. 국내 다이아몬드 시장은 지난해 4573억원 규모로 집계됐다. 전년보다 35.6% 급감했다. 온현성 월곡주얼리산업연구소 소장은 “한 쌍당 예물 주얼리 평균 구매 비용 역시 가장 낮았다”고 설명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혼인 감소로 소비층이 줄어 예물 주얼리 시장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국내 혼인 건수는 1996년 43만5000건으로 정점을 찍은 뒤 꾸준히 감소했다. 마지막 연간 통계인 2021년 혼인 건수는 19만3000건으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3분기 혼인 건수가 15분기 만에 처음 소폭 반등했지만, 코로나 기저효과에 불과하다는 분석이다.
종로 귀금속 거리의 상인들은 이런 환경 변화를 누구보다 절실히 체감하고 있다. 2000년대 중반까지 귀금속 도소매 상점과 세공소 3000여 개가 모여 단일 귀금속 상권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했던 곳이다. 지금은 서너 집 건너 한 집꼴로 ‘임대’ 딱지가 붙어 있을 정도로 불황의 골이 깊다.
서울시에 따르면 종로3가역 인근에 새로 생긴 시계·귀금속 점포의 5년 이상 생존율은 64.8%다. 개업 5년 안에 점포 3개 중 1개는 폐업한다는 얘기다. A 귀금속점 사장은 “핵심 고객층이 사라져 아쉽다”며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던 종로 귀금속 거리가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느냐”고 푸념했다.
예물 주얼리 산업의 쇠락과 대조적으로 혼인 예물을 제외한 비예물 주얼리 시장은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금값이 뛴 영향으로 통계상 반등한 모습을 보였다. 금·백금 등으로 만든 일반 주얼리 시장 규모는 지난해 4조9074억원으로 전년 대비 1조1652억원 증가했다.
수입 명품 주얼리 소비도 활황이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주얼리 수입액은 10억7082만달러(약 1조4000억원)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수입 주얼리의 3분의 2는 반클리프아펠, 까르띠에 등 명품 브랜드가 포진한 이탈리아와 프랑스, 미국에서 건너온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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