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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천동 '달동네 아이들'·판자촌 뒤섞인 압구정…미술관, 타임캡슐을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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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불구불하고 좁아터진 골목, 다닥다닥 붙어서 햇빛조차 제대로 들지 않는 집, 오물과 악취로 가득 찬 길거리….

약 200년 전 프랑스 파리의 모습은 이랬다. ‘낭만의 도시’로 불리는 파리가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풍경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19세기 파리시가 대규모 도심 재개발을 앞두고 사진가 샤를 마르빌에게 파리의 풍경을 고화질 사진으로 찍게 한 덕분이다. 당시의 파리시청 지도부는 과거의 파리가 있어야 비로소 새로운 파리가 탄생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서울도 재개발 전을 기록한 사진들을 지니고 있다. 다만 정부나 서울시 차원에서 계획한 것은 아니었다. 1980~1990년대 몇몇 사진가는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봉천동 금호동 한남동 등 재개발을 앞둔 지역을 이리저리 발로 뛰었다. 그곳에 있는 판잣집, 상점, 길거리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환한 웃음을 카메라에 담았다. 곧 사라지겠지만, 그렇다고 잊혀져서는 안 된다는 마음으로.

김정일 김재경 임정의 최봉림도 서울의 옛 모습에 카메라를 들이댄 사진가다. 신림동 서울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뮈에인, 내 마음속의 오목렌즈’에 들어서면 이들이 기록한 30~40년 전 서울의 모습이 펼쳐진다. 미술관 자체가 마치 과거 시간을 응축해놓은 타임캡슐이 된 듯하다.

전시는 시간순으로 구성돼 있다. 2층 전시장 입구에서 제일 먼저 보이는 김정일 작가의 1982년 ‘기억 풍경’ 연작부터 임정의 작가의 1980년대 중반 사진, 최봉림 작가가 1990년 봉천동에서 찍은 작품, 김재경 작가의 1999년 서울을 기록한 ‘뮤트’ 연작까지 약 20년간의 서울 풍경이 한자리에 모여있다. 처음엔 ‘뭘 이런 걸 찍었나’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공중변소, 시멘트 계단, 빨랫줄에 걸린 옷 등 대수롭지 않은 풍경들이 대다수다. 소위 말하는 ‘돈 안 되는’ 사진들뿐이다. 그 안에는 아름다운 풍경이나 어떤 메시지를 던지기 위한 연출이 없다. 그저 있는 그대로를 찍었을 뿐이다.

그래서 이 사진들이 오히려 귀하다. 그때 그 시절을 살았던 관람객은 ‘원주쌀상회, 정부미·일반미 파는 곳’ ‘덕명실업학교, 82학년도 학생 모집’ 등 간판과 포스터를 보며 추억에 잠기고, 이 시절을 살아본 적 없는 관람객은 ‘그때는 그랬구나’ 하고 깨닫는다. 그 옛날 서울 사진을 보고 나면 일상의 서울이 무척이나 새로워진다. 전시는 다음달 5일까지.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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