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간부가 버스 운전기사에게 “사표를 쓰라”고 말하고 버스 키를 회수했다면 별도의 서면통지가 없었더라도 기사를 해고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버스기사 A씨가 중앙노동위원장을 상대로 낸 부당해고구제재심판정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대전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20일 밝혔다.
A씨는 2020년 1월 전세버스회사에 입사했는데, 주어진 업무를 두 차례 무단으로 빼먹었다. 다음달 회사 관리팀장은 A씨를 질책하다 말다툼을 벌였고 “사표를 쓰라”는 말을 수차례 반복했다. “해고하는 것이냐”는 A씨의 물음에도 “응”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A씨가 갖고 있던 버스 키도 직접 회수했다.
A씨는 이튿날부터 회사에 출근하지 않았다. 회사 측은 이를 문제 삼지 않다가, 3개월 뒤 A씨가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하자 “해고한 사실이 없으니 복귀해 근무하고자 한다면 즉시 근무할 수 있다”는 취지로 ‘무단결근에 따른 정상근무 독촉 통보’를 했다.
A씨는 부당해고를 인정하고 사과하라고 회사 측에 요구했다. 아울러 앞선 3개월간 임금을 먼저 지급하면 복직하겠다는 내용증명을 보낸 뒤 소송을 제기했다.
1·2심은 A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사표를 쓰라고 한 것은 원고가 무단 결행 후 자신에게 무례한 언행을 한 것에 대해 화를 내는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한 표현”이라며 “이는 사직서의 제출을 종용하는 것일 뿐 근로계약관계를 종료시키겠다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아울러 관리팀장에게 해고 권한이 없고, 대표이사가 해고를 승인한 적이 없다는 점도 근거로 들었다.
그러나 대법원은 버스 키를 회수하고, 사표를 쓰라는 말을 반복한 점에 주목했다. 대법원은 "통근버스 운행 업무를 담당하는 원고에게 버스 키 반납을 요구하고 이를 회수한 것은 근로자의 노무를 수령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평가할 수 있다"고 했다. 아울러 "원고에게 사표를 쓰고 나가라는 말을 여러 차례 반복하는 등의 언행을 한 것은 참가인이 원고의 의사에 반해 일방적으로 근로관계를 종료시키고자 하는 의사를 표시한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며 "단순히 우발적 표현에 불과하다고 볼 것은 아니다"고 했다.
또 회사가 인력 부족으로 운영상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3개월 동안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다가 A씨가 부당해고 구제 신청을 한 뒤에야 출근을 독촉했다는 점 등을 볼 때 대표이사가 묵시적으로 해고를 승인·추인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회사가 원고에게 서면으로 해고 사유 등을 통지한 적은 없으나 서면 통지는 해고의 효력 여부를 판단하는 요건일 뿐 의사 표시의 존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아니다”라고 판시했다.
최한종 기자 onebe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