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의 아버지 B씨는 1974년 1월 경남 창녕군에 산소로 쓸 땅을 사들여 등기를 마쳤다. 땅은 이후 50년 가까이 A씨 가족의 선산으로 이용됐다. A씨의 묏자리 뿐 아니라 자식들의 자리까지 이미 정해놨다. 하지만 A씨는 최근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등기를 정리하다 땅의 명의가 아버지와 동명이인인 C씨로 돼 있는 것을 발견했다.
끝이 아니었다. C씨가 세금을 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서울 강남구와 충남 금산군이 각각 이 땅을 압류로 잡았던 사실까지 뒤늦게 알게 된 것이다. 세금 체납액이 1000만원이 넘자 강남구는 땅을 서울시로 이관했고, 서울시는 캠코(한국자산관리공사)에 다시 땅을 넘겨 공매에 붙였다. 결국 땅은 생면부지의 D씨에게 넘어갔다.
하루아침에 선산을 빼앗기게 된 A씨는 해당 기관을 하나씩 찾아다녔다. 무책임한 ‘탁상행정’이 하나씩 드러났다. 토지대장을 정리하던 창녕군이 B씨가 아닌 C씨를 땅 주인으로 무심코 올린 게 사태의 시작이었다.당시는 주민등록번호가 도입되기 전이라 한자 이름과 주소만 가지고 등기를 했는데, 창녕군에서 제대로 본인 확인을 하지 않고 C씨를 주인으로 올린 것이다.
첫 단추가 잘못 꿰어졌지만 이를 바로 잡은 공무원은 없었다. 충남 금산군, 강남구, 서울시, 캠코 모두 잘못 작성된 토지대장을 토대로 땅 주인을 판단했다.
관련 기관들은 모두 실수를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서로 다른 기관의 잘못이 크다며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토지대장을 잘못 작성한 창녕군은 공매를 한 캠코의 잘못이 가장 크다는 입장이다. 창녕군은 “1차적으로 한국자산관리공사에서 공매를 할 때 소유자를 확정하면 등기를 확인해야한다”며 “등기를 보면 C씨와 주소가 일치하지 않는데 이를 확인하지 않은 게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캠코는 그러나 “캠코는 등기사항전부증명서 및 토지대장 등 공부 발급을 통해 확인된 소유자(체납자)를 대상으로 적법한 절차를 걸쳐 공매를 진행했다”며 “피해 보상 요구 시, 법적 절차에 따라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기관들은 잘못은 인정했지만 땅을 되찾기 위해선 소송을 하라는 입장이다. 이미 공매가 완료됐고, 새로운 땅 주인 D씨는 문제가 있는 땅이라는 것을 모른채 매입했기 때문이다. 결국 A씨는 공매로 땅을 구입한 D씨에게 돈을 주고 땅을 사기로 했다. 소송까지는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들고, 그렇다고 선산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A씨는 “무책임한 행정으로 선산을 잃을 뻔 했다”며 “단 한명의 공무원이라도 확인을 했다면 이런 황당한 일이 발생했겠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강영연 기자 yy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