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부터 제빵사로서 후배들을 가르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프랑스에서 한국으로 넘어오니 피에르 선생님 혹은 쏘서방으로 불리고 있어요.”
SPC그룹이 운영하는 요리학교 ‘SPC컬리너리아카데미’에서 부부강사로 근무하는 쏘세스 피에르(사진 왼쪽)와 김윤정씨는 한국에 정착했던 2년 전을 떠올리며 이같이 말했다. SPC컬리너리아카데미에서는 제빵 경력이 있는 수강생들을 모집해 쏘세스씨나 김씨와 같은 전문 강사의 수업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제과제빵, 와인, 초콜릿요리 등 SPC그룹 계열사에서 판매되는 제품이 이곳에서 개발되기도 한다.
국적도 전문분야도 달랐지만…
국적이 다른 두 사람을 엮어준 것은 제빵이다. 쏘세스 피에르는 16살 때부터, 김윤정씨는 19살때부터 제빵 공부를 시작했다. 10년 가까운 경력이지만 쏘세스씨가 제빵을 접한 것은 우연이었다. 프랑스에서는 중학교 졸업 후 2주동안 의무적으로 직업 실습을 수행해야 하는데 마침 그의 집 근처에 블랑제리(빵집)가 있었던 것. 쏘세스씨는 “당시 소방서에서 일을 했다면 소방관이 됐을 수 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반대로 김윤정씨는 어려서부터 제빵에 대한 꿈을 키워왔다. 부모님이 맞벌이로 바쁜 와중에 친언니와 홈베이킹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고등학교 졸업 후 국내 대학 입학 대신 제빵으로 유명한 프랑스 국립 제과제빵학교(INBP) 입학을 결정했다. 김 씨는 “같은 제빵 레시피라도 환경이 달라지면 전혀 다른 맛의 빵이 나온다”며 “재료를 잘 탐구하고 변수를 제어하는 능력을 키우는 과정이 매력적”이라고 강조했다.
두 사람은 2018년 미슐랭 스타 셰프인 ‘티에리 막스’가 운영하는 티에리 막스 블랑제리에서 근무하다가 만나게 됐다. 제빵사들은 여러 블랑제리를 돌아다니며 기술을 익히는 것이 일반적인지라 두 사람이 같은 블랑제리에서 근무했던 기간은 일 년이 채 되지 않는다. 전문 분야도 달랐다. 쏘세스씨가 크로와상처럼 결이 살아있는 ‘비에누아즈리(버터, 달걀, 설탕 등을 주재료로 제조해 디저트와 같이 달달한 빵)’를 주로 만든다면 김씨는 바게트, 깜파뉴 등 식사용 빵이 주특기다.
블랑제리 퇴사 후 ‘선배’ 피에르가 ‘후배’ 윤정씨에게 먼저 연락했고 둘은 교제를 시작했다. 피에르는 “남성 유럽인이 대부분이었던 블랑제리에서 윤정씨는 유일한 여성 아시안 제빵사였기 때문에 자연히 관심이 갔다”고 전했다.
기발한 제빵 가득한 한국
쏘세스 피에르와 김윤정씨는 2021년 2월 결혼 후 돌연 한국행을 결정했다. 쏘세스씨의 버킷리스트에 ‘후학을 양성하고 싶다’는 항목이 있었는데 마침 SPC그룹에서 두 사람을 컬리너리 아카데미의 강사로 초빙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기 때문이다. 쏘세스씨는 “블랑제리에서 3년간 책임자로 근무하면서 ‘다른 도전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며 “프랑스 이외에 다른 나라에서는 어떻게 빵을 만드는지, 아내의 나라인 한국은 어떤 곳인지 궁금했다”고 회상했다.그는 한국에 와서 ‘별세계’를 마주했다. 크림을 잔뜩 넣은 크림 소금빵, 크로와상 생지를 와플 틀에 넣어 만드는 크로플, 필링을 가득 채워 한 입에 넣기도 힘든 뚱카롱(뚱뚱한 마카롱) 등한국식 디저트를 볼 때마다 사진을 찍어 부모님께 보낸다. “관습적인 제빵이 아닌 창의적인 제빵을 볼 수 있는 것이 한국살이의 매력”이라고 쏘세스는 말했다. 그는 “프랑스에서 빵은 식사의 일부이지만 한국에서는 디저트로 인식된다”며 “프랑스에서는 크로와상 반죽으로 와플을 만들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두 부부의 수강생 대부분이 개인 카페 창업을 준비중이거나 카페를 운영중인 사람들이다. 한 수업 당 8주의 짧은 기간이지만 수강생들은 수료 이후에도 이들을 찾는다. 쏘세스 피에르가 올 1월 프랑스 리옹에서 열린 프랑스 유명 제빵대회 ’쿠프 드 프랑스 드 라 블랑제리’에 참가했을 때 김윤정씨는 수강생들과 함께 프랑스로 가서 남편을 응원했다. 쏘세스는 그 대회에서 우승을 거머쥐고 올해 10월 유럽 대회를 준비중이다.
부부의 꿈은 은퇴 후에 자신들의 이름을 건 블랑제리를 만드는 것이다. 수 년 간 쌓아온 기술과 SPC컬리너리 아카데미에서 교육하며 터득한 것을 바탕으로 맛있는 빵을 만들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쏘세스는 “한국인들이 매일 쌀밥을 지어 먹듯이 프랑스에서는 단골 블랑제리에 가서 같은 제빵사가 만든 바게트나 크로와상을 매일 사 간다”며 “손님들이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블랑제리를 차리고 싶다”고 말했다.
한경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