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을 국민의힘 명예 대표로 추대하는 방안이 친윤계를 중심으로 거론되고 있다. 당과 대통령 간 협력을 강화해 책임 정치 구현과 당정 융합을 이루겠다는 명분이다. 이에 비윤계는 “여당을 용산 출장소로 만들 거냐”(천하람 당대표 후보)며 반발하고 있어 전당대회 이후 당내 갈등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친윤계 핵심 이철규 국민의힘 의원은 15일 친윤계 주도의 공부 모임인 ‘국민공감’ 세미나 후 기자들과 만나 윤 대통령의 ‘국민의힘 명예 대표 추대론’에 대해 “가능한 얘기”라고 했다. 이 의원은 “당과 대통령이 같은 방향을 봐야 하는데 지금까지의 당정 분리론이 잘못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도 이날 기자들과 만나 “명예 당대표 얘기는 처음 듣지만 집권여당과 대통령실은 유기적인 협력체계가 작동돼야 한다”고 힘을 실었다.
지난 13일 장제원 의원이 “당정이 하나가 되지 못하고 계속 충돌했을 때 정권에 얼마나 부담됐는지 정당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촉발된 당정일체론의 연장선으로 분석된다. 친윤계는 윤 대통령의 명예 당대표 겸임이 당헌·당규상으로도 문제가 없다고 보고 있다. 국민의힘 당헌 제7·8조는 ‘대통령은 명예직 이외의 당직을 겸임할 수 없다’고 규정하면서 대통령에게 명예직은 허용하고 있다.
대통령실은 일단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당에서 나오는 얘기들을 지켜보고 있다”고 했다. 당정 협의를 확대·강화하는 등 당정일체론에는 대체로 공감하고 있지만, 당무 개입 논란이 지지율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분석되면서 당대표 선거에 거리를 둬야 한다는 신중론에 힘이 실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권주자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비윤계는 즉각 비판하고 나섰다. 천하람 후보는 이날 KBS 라디오에 출연해 “명예 당대표 이런 게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며 “입법부는 행정부와 협력하는 것도 있지만 감시하고 견제하는 역할도 있다”고 꼬집었다. 안철수 후보 측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전당대회 와중에 이것이 검토되고 있다면 대통령이 당무에 개입하는 인상을 주고 대통령을 전당대회에 끌어들이는 처사”라며 “친윤계가 대통령을 곤란하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논란이 불거지자 친윤계의 지지를 받고 있는 김기현 당대표 후보도 일단 거리를 두는 모양새다. 김 후보는 “어차피 당정은 당헌과 상관없이 운명공동체로 같이 책임지고, 같이 정책을 펼쳐나가야 하는 동지적 관계”라며 “굳이 어떤 직책으로 논란을 벌일 필요는 없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철규 의원도 한 언론과의 통화에서 “그런(명예 대표) 얘기를 한 게 아니다. 당정 분리론을 가지고 얘기한 것”이라고 수습에 나섰다. 다른 여권 관계자는 “당정 융합이 중요하지 (대통령이) 직을 맡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고 말했다.
맹진규/좌동욱/오유림 기자 mae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