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지금까지 상장회사 최고경영자(CEO) 등 기업인은 사외이사가 될 수 없었다. 공정거래법상 ‘동일인(기업 총수) 관련자’에 사외이사를 포함했기 때문이다. 공정거래위원회 실무에서는 해당 사외이사가 최대주주로 자신의 회사를 지배하는 경우뿐만 아니라, 지분은 없다고 하더라도 ‘대표이사’로 재직하고 있는 회사는 동일인의 계열사로 편입되는 것으로 해석해 CEO는 다른 회사의 사외이사로 참여할 수 없었다.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의 사티아 나델라 이사회 의장 겸 CEO는 현재 스타벅스 사외이사로 활동하고 있고, 애플 CEO이자 사내이사인 팀 쿡도 나이키 사외이사를 겸한다. 한국 공정위가 그동안 얼마나 황당한 규제를 해왔는지 알 수 있다.
필자와 한국상장회사협의회가 함께 조사한바로는 MS의 선임사외이사 존 W 톰슨, 사외이사 리드 호프만, 휴 존스턴, 테리 리스트, 산드라 E 피터슨 등 대부분 사외이사는 모두 기업인이거나 투자회사의 파트너이면서 한두 기업의 사외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애플도 비슷하게 사외이사 알렉스 고르스키는 JP모간과 IBM 사외이사, 존슨앤드존슨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다. 같은 회사의 사외이사 안드레아 정, 모니카 로자노, 수전 와그너 등도 세 군데 정도 사외이사를 맡은 것으로 확인된다.
한기정 위원장의 공정위는 이번 공정거래법 시행령을 개정해 사외이사가 지배하는 회사는 계열회사 범위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예외가 있다는 점에서 흔쾌한 조치는 아니지만, 이것만으로도 기업 CEO 등 임원이 다른 회사의 사외이사로 활동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지금까지는 기업인을 사외이사에서 거의 배제했기 때문에 주로 전직 관료와 학계 인사를 사외이사로 초빙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시행령 개정으로 사외이사 풀(pool)을 크게 넓혔고 사외이사 구성원의 다양성을 실현할 수 있게 됐다. 잘된 일이다.
다만, 상법 시행령상 아직도 상장회사 사외이사는 추가로 한 곳의 이사만 될 수 있다(최대 2곳). 인도 콜카타 출신 라자트 굽타는 40대 중반에 세계 최고의 컨설팅 회사 매킨지의 CEO가 됐다. 2007년에 은퇴해 2010년에는 동시에 상장기업 여러 곳의 사외이사로 일했다. 2007~2011년 3월에는 프록터앤드갬블, 2006~2010에는 골드만삭스, 2007~2011년 3월에는 젠팩트, 2008~2011년에는 AMR과 그 모회사인 아메리칸항공, 2009~2011년에는 하만인터내셔널의 이사회 멤버였다. 그 외 러시아 은행인 스베르방크 이사로도 재직했다. 5~6곳의 사외이사를 겸하는 굽타 같은 사례는 한국에서 나올 수 없다.
사외이사 임기를 법령으로 제한하는 나라도 한국밖에 없다. 미국 경영학계의 실증연구에 따르면 사외이사는 취임 후 6년이 지나야 비로소 성과를 보이기 시작한다고 한다. 한국 법률은 기업에 도움이 될 만한 재직 6년차에 쫓아내라고 한다. 한술 더 떠 자본시장법은 대규모 상장회사인 경우 이사 전원을 특정 성(性)의 이사로 구성해서는 안 된다고 못 박고 있다. 기업 이사회에 반드시 남녀 모두가 참여해야 회사가 돌아간다는 것인가. 오지랖이 넓기도 하지. 다보스포럼에 참석했던 윤석열 대통령은 “제도가 글로벌 스탠더드에 안 맞으면 언제든 알려 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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