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스타트업에 5조원을 투자하는 ‘서울비전 2030펀드’를 조성한다. 글로벌 경기 침체와 고금리 등 거시 환경 변화로 돈줄이 마른 스타트업 업계에 단비가 될 전망이다.
9일 한국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시는 최근 자체 예산과 공공, 민간 자금을 매칭 방식으로 묶어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총 5조원 규모의 ‘서울비전 2030펀드’ 조성에 나섰다. 지방자치단체가 조성하는 펀드로는 역대 최대 규모다. 서울시 출자금은 총 3500억원으로 올해에만 예산 400억원을 확보했다. 이후 출자 재원은 서울시 통합재정 안정화기금 차입, 일반예산, 기존 펀드 투자 회수금을 활용할 계획이다. 펀드는 투자 4년에 회수 4년을 더해 2030년까지 8년간 운용한다. 시는 다음달부터 펀드 운용사를 모집한다. 투자 분야는 디지털전환, 바이오, 문화콘텐츠 등이다.
스타트업 업계는 환영하고 나섰다. 고금리·고물가·고환율로 벤처투자 시장으로 들어오는 돈이 급감한 상황에서 대규모 투자가 기대되기 때문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고금리가 지속되면서 지난해 12월에만 투자금액이 30% 줄어드는 등 벤처투자 시장 돈줄이 바짝 마른 상태”라며 “비전펀드가 민간 자본 투자를 촉진하는 마중물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한국판 비전펀드' 만드는 서울시…돈줄 마른 벤처업계에 '단비'
서울시는 지난해 5월 ‘5개 분야 일자리 공약’과 ‘디지털 선도도시 서울’을 구현하겠다는 목표를 발표했다. 이를 위해 디지털 전환 기술과 서울형 신성장·신기술 산업에 대한 투자를 약속했다. 하지만 금리 인상 등 거시환경이 급변하면서 목표 달성이 쉽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커졌다. 서울시가 5조원이라는 역대급 스타트업 펀드 조성에 나선 배경이다.9일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지난해 벤처투자금액은 전년보다 9162억원(11.9%) 감소했다. 특히 금리 인상이 본격화한 하반기에만 1조8451억원 급감했다. 올해 모태펀드까지 규모를 축소해 상황이 더 심각해질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초기 투자가 절실한 스타트업들의 생존 자체가 힘들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비전 2030펀드는 이 같은 상황을 감안해 크게 6개 분야에 투자한다. 먼저 글로벌 창업생태계 ‘톱5’ 구현을 목표로 1조4000억원 규모의 ‘스케일업 펀드’를 조성한다. 또 서울시 연구개발(R&D) 지원 사업에 참여한 기업 중 민간 투자를 받지 못한 기업들을 위한 ‘기술 첫걸음 펀드’(2500억원)를 만든다. 이와 함께 ‘디지털대전환펀드’ ‘창업지원펀드’ ‘서울바이오펀드’ ‘문화콘텐츠펀드’도 운용할 예정이다.
서울시는 2019년 조성한 미래혁신성장펀드의 성공 경험을 토대로 서울비전 2030펀드 규모를 대폭 늘렸다. 미래혁신성장펀드는 서울시 기업 470곳에 6451억원(지난해 10월 기준)을 투자했다. 서울시 출자액(1751억원) 대비 368.6%나 덩치가 불어난 것이다. 출자금에 모태·성장금융펀드와 일반 LP 자금까지 더해지는 ‘레버리지’ 효과 덕이다. 비전 2030펀드도 이 원칙이 이어진다. 서울시가 출자한 금액의 100~200% 이상을 서울시 기업에 투자하는 것이 기본 투자조건이다.
고용 창출 효과도 크다. 중기부에 따르면 스타트업에 10억원을 투자할 경우 4.2명이 일자리를 얻는 것으로 분석됐다. 5조원을 투자하면 2만 개 이상의 일자리가 생긴다는 얘기다.
미래혁신성장펀드가 투자한 혁신기업의 매출은 2019년 대비 247%(2021년 말 기준) 높아졌다. 같은 기간 고용인원도 5398명에서 1만5631명으로 289% 늘었다. 서울시 투자가 마중물이 돼 후속 투자도 잇따랐다. 같은 기간 투자유치는 7868억원에서 2조5000억원으로 320% 증가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기업들에 가장 필요한 것은 투자금”이라며 “공간 지원, 인력 육성, 수출 지원 등 다양한 스타트업 지원 정책과 비교했을 때 투입 예산 대비 효과가 가장 크다”고 설명했다. 강영연 기자
강영연 기자 yy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