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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에서나 환영 받겠지"…혹평 이겨내고 태어난 '피아니즘 진수' [김수현의 마스터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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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러시아를 대표하는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1873~1943)가 태어난 지 150주년이 되는 해다. 그는 낭만주의의 절정을 음악으로 표현하면서 피아노의 매력을 극대화했고, 피아노 연주에서 초고난도 기교를 요구하며 수많은 피아니스트를 좌절하게 했다. 라흐마니노프의 대표작으로는 대부분이 ‘피아노 협주곡 2번’을 꼽는다. 강렬한 도입부와 섬세한 선율 진행, 폭발적인 표현력으로 라흐마니노프의 음악 세계를 단번에 체감할 수 있는 걸작이라서다. 뛰어난 작품성뿐 아니라 라흐마니노프에게 작곡가로서 새 인생을 불어넣은 작품이란 점에서도 가치가 높다.

라흐마니노프는 이른 나이에 천재성을 입증했다. 열여덟 살이었던 1891년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작곡했고, 이듬해 단막 오페라 ‘알레코’를 발표했다. 스무 살이 되기도 전에 이름을 알렸다. 누구보다 빠르게 성공했지만 그만큼 위기도 빨리 찾아왔다. 1897년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 1번’ 초연 무대가 사건의 발단이었다. 러시아 작곡가 글라주노프가 지휘한 공연이 참패하면서다. 평론가들은 “지옥에 있는 음악학교에서나 환영받을 작품” “재앙을 그린 작품” 등의 혹평을 쏟아냈다. 당시 글라주노프가 술을 마시고 악단을 지휘했다는 소문이 일었던 터여서 비난의 화살을 작곡가인 라흐마니노프에게 오롯이 돌리기엔 모호했다. 하지만 예민한 성격의 라흐마니노프가 받은 충격은 컸다. 심각한 신경쇠약 증세를 겪어야 했다. 밤마다 잠자리에 들 수 없었고, 피아노 연주는 물론 오선지에 음표 하나를 적기 힘들 정도의 상태였다고 전해진다. 그렇게 그는 3년간 음악 활동을 중단한다.

절망에 빠진 라흐마니노프를 구출한 건 정신과 의사였다. 니콜라이 달 박사는 최면 요법을 통해 삶의 의지를 잃은 음악가를 치료했다. 최면을 걸어 “당신은 새로운 협주곡을 써낼 것이고, 협주곡은 엄청난 성공을 거두게 될 것”이라는 말을 되풀이하는 식이었다. 달 박사의 치료법은 먹혀들었다. 라흐마니노프는 1900년 다시 펜을 집어들었다.

이렇게 탄생한 작품이 세기의 명작이라 불리는 ‘피아노 협주곡 2번’이다. 라흐마니노프는 이 작품으로 러시아 클래식 음악계 최고 영예의 글린카상을 받으면서 완벽하게 재기에 성공한다. 그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은 화려한 피아니즘의 진수를 보여준다. 피아노를 통해 발산하는 극적인 표현과 풍부한 색채, 고난도 기교에서 이뤄지는 독자적인 선율 표현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사실 ‘피아노 협주곡 2번’의 매력에는 라흐마니노프의 신체적 특징도 반영됐다. 그는 손가락이 길었다. ‘도’에서 한 옥타브를 뛰어넘은 ‘라’까지 한 번에 짚을 정도로 길었다. 기다란 손가락으로 넓은 간격의 화음을 작품 곳곳에서 사용했다.

c단조 피아노 협주곡인 이 작품은 3개의 악장으로 구성돼 있다. 1악장은 어두운 음색으로 8개의 코드 진행을 이루는 피아노 독주로 시작된다. 멀리서 들리던 종소리가 점차 가까이 다가오는 듯한 강렬한 도입부가 인상적이다. 이 악장에서는 러시아풍의 서정적 선율, 오케스트라와 피아노가 선율을 주고받으며 이루는 거대한 앙상블에 집중해야만 작품의 진가를 온전히 맛볼 수 있다. 2악장은 느린 악곡으로 피아노의 셋잇단음표가 목관악기의 선율에 교묘하게 꿰어지는 독특한 진행을 특징으로 한다. 3악장은 피아노의 초고난도 기교가 쏟아지는 악곡이다. 후반부에 피아노가 주도적으로 연주 속도를 높이며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구간은 이 작품의 클라이맥스로 꼽힌다. 마지막 코드가 울릴 때까지 고조되는 선율에 온 감각을 집중한다면 라흐마니노프만의 역동성을 배로 느낄 수 있다.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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