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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004字의 간절함…"시간은 돈인데, 규제 묶인 혁신벤처 기회 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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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용산 대통령실 2층 자유홀에 ‘CES 2023’에서 ‘최고혁신상’을 받은 5개 벤처·스타트업 부스가 차려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그래핀 소재로 열을 생성하는 폴더블 난방기기(라디에이터)를 살펴본 뒤 홍병희 그래핀스퀘어 대표에게 “그래핀이 이렇게 투명하냐”고 물었다. 홍 대표가 “전기차 앞유리는 물론 반도체, 의약품 등에도 쓰일 수 있다”고 하자 윤 대통령은 “대단하다”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행사 뒤 홍 대표는 미리 준비한 1004자(字)의 손편지를 관계자를 통해 윤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나노신약 가이드라인 없는 韓
그래핀은 두께가 0.2㎚(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로 종이의 100만분의 1 정도로 얇지만 강철보다 100배 이상 강도가 높고 구리보다 전자 이동성이 100배 빠르다. 그래서 ‘꿈의 신소재’, ‘21세기 황금’으로 불린다.

홍 대표는 포스텍에서 박사학위까지 마친 뒤 2004년부터 그래핀 연구를 시작해 합성기술 등을 최초로 개발한 세계적 권위자다. 그가 개발한 ‘그래핀 키친 스타일러’는 미국 타임지가 ‘2022년 최고 발명품’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그래핀 최고 석학으로 성공가도를 달리는 그는 왜 손편지를 썼을까.

홍 대표는 3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대통령을 만나는 평생 한 번 올까 말까 한 기회인데 꼭 말씀을 드려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그래핀 제품과 소재 등을 개발하는 그래핀스퀘어 이외에 신약회사인 바이오그래핀의 창업자이기도 하다.

그래핀은 생리학적으로 안정성이 뛰어나면서 독성이 거의 없어 약물전달 플랫폼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에 착안한 홍 대표는 2017년 바이오그래핀을 설립해 세계 최초로 그래핀을 활용한 치매·파킨슨병 등 뇌신경질환 치료제 개발에 나섰다.

그래핀 등 나노기술을 활용한 신약은 글로벌 바이오업계에서 점차 대세로 자리잡고 있다.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한 화이자와 모더나 역시 지질나노입자(LNP)를 전달물질로 사용했다.

이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나노의약품 임상과 평가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조기에 마련했기에 가능했다. 홍 대표는 “미국에서는 2017년께 가이드라인이 나오면서 나노신약 임상 등 연구개발(R&D)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며 “현재까지 80여 종이 승인을 받았고 230여 개 신약후보물질(파이프라인)의 임상이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한국에선 이렇다 할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 홍 대표는 “한국에는 나노신약 개발을 승인할 가이드라인 자체가 없다”며 “임상시험을 하려면 미국 등 해외로 나가야 한다”고 하소연했다. 바이오그래핀은 2020년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 현지법인을 세우고 임상 연구를 하고 있다.
“아예 본사를 옮겨야 할 판”
이 같은 현실은 홍 대표가 윤 대통령에게 전달한 손편지에 고스란히 담겼다. 손편지에서 홍 대표는 “저희가 창업한 바이오그래핀을 비롯해 많은 신약벤처가 미국으로 옮겨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기존 화학신약, 바이오신약의 한계를 뛰어넘는 나노신약은 향후 반도체를 넘어서는 (한국의) 차세대 먹거리가 될 가능성이 있다”며 “신속하게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나노신약을 개발하는 벤처기업들이 한국에서 꿈을 이루고 세계를 선도하도록 적극 지원을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손편지에서 ‘세상에 없던 혁신기술’을 강조한 배경을 묻자 홍 대표는 신약 허가가 취소된 ‘인보사 논란’ 얘기를 꺼냈다. 그는 “생소한 기술을 접목한 신약에 소극적인 당국의 입장도 이해는 간다”면서도 “그렇기에 ‘톱다운’식으로 정책적 결단이 필요하다”고 했다.

바이오그래핀은 국내에서 사업을 계속할지를 고심하고 있다. 홍 대표는 “미국에서 임상을 하다보니 한국에서보다 3~4배 비용을 더 쓰고 있다”며 “기술개발도, 투자도 한국에서 했는데 수백억원을 미국에서 쓰고 있는 실정”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에서 더 이상 사업이 어렵다면 본사를 미국이나 싱가포르로 옮겨야 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물론 신약 제조는 삼성바이오로직스나 셀트리온 등이 워낙 잘하고 있어 한국의 경쟁력이 높다”면서도 “정작 가장 많은 부가가치가 발생하는 임상과 라이선싱 등을 해외에 넘기는 것은 신약 개발 주도권을 상실하는 것과 같은 엄청난 국가적 손실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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