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주에 닥친 정리해고 불길이 잡히지 않고 있다. 올 한 달도 안 돼 세계 기술업체들의 정리해고 인원이 지난해 연간 해고 인원의 절반을 넘겼다. 대규모 감원이 계속되자 독일 정보기술(IT ) 업계는 ‘러브콜’을 보내며 인력 쟁탈에 나섰다.
30일(현지시간) 정리해고 현황을 추적하는 사이트인 ‘레이오프파이’에 따르면 올해 들어 이날까지 세계 테크기업들의 감원 인원은 7만5912명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연간 감원 규모(15만4336명)의 49%에 달하는 인원이 약 한 달 만에 실직 통보를 받았다. 이달 감원 규모는 코로나19 유행으로 정리해고가 속출했던 2020년 2분기 규모(6만141명)를 웃도는 수치다.
경제 성장 둔화와 인공지능(AI) 도입을 고려해 테크기업들이 인사 전략을 수정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날 경제매체 포브스는 “최근 해고된 테크기업 인력들의 평균 경력 연차는 11.5년”이라며 “빠르게 대체할 수 있는 저연차가 해고된 게 아니다”고 짚었다. 이어 “해고 인력의 28%가 인사 분야에서 나왔다”며 “채용이 줄어드니 인사(HR) 인력이 덜 필요해진 것도 있지만 HR은 일부 기능이 자동화로 대체되는 영역”이라고 설명했다.
감원의 불길은 의료 업계에도 닥친 상황이다. 이날 헬스케어 기술업체인 네덜란드 필립스도 2025년 안에 직원 6000명을 줄이기로 했다. 지난 10월 4000명을 해고한 데 이은 추가 정리해고다. 세계적으로 소비가 둔화되는 상황에서 안전 문제로 인한 리콜 사태로 수면무호흡증 치료기 시장 점유율을 잃은 게 뼈아팠다. 제약사인 미국 암젠도 이날 300명 감원 계획을 발표했다. 프랑스 사노피도 800명 해고 수순에 들어갔다.
반면 인력난을 호소해 온 독일 IT 업계는 실리콘밸리에서 해고 당한 이들에게 눈독을 들이고 있다. 30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폭스바겐의 소프트웨어 자회사인 카리아드의 라이너 주게호어 최고인력책임자(CPO)는 “그들은 해고하고 우리는 채용한다”며 “미국, 유럽, 중국 등에 수백개 일자리가 있다”고 홍보했다. 주디스 게라크 독일 바이에른주 디지털부 장관도 최근 구인·구직 SNS인 링크드인에서 IT 업계 실직자를 겨냥해 “바이에른으로 초대하고 싶다”는 내용의 게시물을 올렸다.
독일은 고령화 영향으로 IT 인력 부족을 겪고 있다. 독일 정보통신산업협회에 따르면 현지 IT 업계 일자리 중 13만7000곳이 공석이다. 로이터통신은 “독일 기업들은 실리콘밸리의 정리해고를 최고의 인재를 채용할 기회로 보고 있다”며 “독일 정부는 이민 규정을 단순화하고 시민권 취득을 쉽게 만들면서 고숙련 이민자를 유혹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