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영 부조리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한 병사의 숨겨진 사망 원인이 밝혀졌다.
대통령소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이하 위원회)는 지난 30일 제59차 정기회의를 열고 1988년 숨진 A 일병의 사건 개요를 공개하기로 했다고 31일 밝혔다.
위원회에 따르면 A 일병과 관련된 군 기록에는 '빈곤한 가정환경 및 애인 변심 등을 비관하는 한편 휴가 중 저지른 위법한 사고에 대한 처벌을 우려하다가 자해 사망'이라고 기재돼 있다.
그러나 위원회 조사 결과 A 일병의 가정환경은 유복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애인 역시 없었고 휴가 도중 사고를 저지르지도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위원회 관계자는 "오히려 (A 일병은) 사망 전날 있었던 상급자 전역식에서 상급자가 구토하자 토사물을 먹으라고 강요받았다"면서 "이를 거부하자 구타당하는 등 모욕감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개인적 사유가 아닌 부대 내의 만연한 구타·가혹행위와 비인간적 처우 등이 원인이 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위원회는 1982년 숨진 B 병장 사건의 개요도 공개했다. B 병장과 관련된 군 기록에는 연말 재물조사 결과 보고서를 잘못 작성했다는 이유로 인사계로부터 질책을 받은 데다, 이를 비관해 숨졌다고 적혀있다.
다만 위원회 조사 결과 B 병장이 속해있던 부대 측에서 그에게 손실분을 채워놓으라고 요구해 심한 압박에 시달렸던 것으로 밝혀졌다. 위원회 측은 B 병장이 수년간 누적된 보급품의 손·망실 상황을 발견하고 보고했음에도 벌어진 일이라고 판단했다.
군 기록에는 B 병장의 사망을 은폐 시도한 흔적도 발견됐다. 그가 숨진 후 군 측은 부대원들에게 거짓 진술을 종용했으며, 유가족이 사망 원인을 알지 못하도록 고인과 고향이 같은 부대원을 긴급 전출시키기도 했다.
이에 위원회는 A 일병과 B 병장 사망 구분을 순직으로 재심사해 명예 회복을 위한 조치를 해줄 것을 국방부 장관에게 요청한 상태라고 밝혔다.
김세린 한경닷컴 기자 celi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