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어닝 쇼크'(실적 충격) 수준의 부진한 지난해 4분기 실적을 발표했다. 4조원대로 추락한 잠정 영업익 발표를 통해 이미 '반도체 혹한기'를 예고했지만, 사업부별 세부 실적 발표로 드러난 반도체 실적 부진 골은 더 깊었다. 반도체(DS) 부문 영업익은 전년보다 무려 96% 급감한 2700억원으로 겨우 적자를 면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4분기 연결 기준 영업익이 4조3061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68.95% 감소했다고 31일 공시했다. 같은 기간 매출액은 70조4646억원으로 7.97% 줄었다.
삼성전자의 분기 영업익이 5조원 아래로 내려간 것은 2014년 3분기(4조600억원) 이후 8년여 만이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가격 하락 심화, 재고자산 평가손실, 스마트폰 판매 둔화로 영업이익이 줄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연매출은 300조원을 돌파했다. 삼성전자 창립 이래 최대 실적이자 국내 기업사에도 처음 있는 일이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액은 302조2314억원으로 전년(2021년) 대비 8.09% 증가했다. 연간 영업익은 43조3766억원으로 15.99% 감소했다.
300조원을 넘긴 연매출에도 반도체 부문 실적 하락이 뼈아팠다. 글로벌 경기 침체에 따른 '반도체 혹한기'가 예상보다 더 심각했다. 고물가·고환율·고금리 3중고에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은 역대 최악의 침체기를 겪고 있다.
DS 부문의 작년 4분기 매출은 20조700억원이다. 영업익은 27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6.95% 급감했다. 증권가 예상 영업익(1조원대)을 크게 밑도는 부진한 성적이다.
삼성전자는 "메모리는 재고자산 평가 손실의 영향 가운데 고객사 재고 조정이 지속되면서 가격이 큰 폭으로 하락해 실적이 대폭 감소했다"며 "시스템LSI는 업계 재고 조정에 따른 주요 제품 판매 부진으로 실적이 하락했다"고 덧붙였다.
다만 파운드리는 주요 고객사용 판매 확대로 최대 분기 및 연간 매출을 달성했다. 첨단 공정 중심으로 생산 능력을 확대하고 고객처를 다변화해 전년 대비 이익이 증가했다.
디스플레이(SDC) 부문은 4분기 매출 9조3100억원, 영업이익 1조8200억원을 올렸다.
중소형은 스마트폰 수요 감소로 전분기 대비 실적이 감소했으나, 플래그십 제품 중심 판매가 실적을 받쳤다. 대형은 연말 성수기 TV용 퀀텀닷 유기발광다이오드(QD-OLED) 판매가 확대되고 액정표시장치(LCD) 재고 소진으로 적자폭이 완화됐다고 삼성전자는 설명했다.
디바이스경험(DX) 부문은 4분기 매출 42조7100억원, 영업이익 1조6400억원을 거뒀다.
모바일(MX)의 경우 스마트폰 판매 둔화와 중저가 시장 수요 약세로 인해 매출과 이익이 모두 하락했다. 네트워크는 국내 5G망 증설과 북미 등 해외 사업 확대로 매출이 증가했다.
영상디스플레이(VD)는 연말 성수기 수요 증가에 적극 대응하고 Neo QLED와 초대형 등 프리미엄 제품 중심 판매로 매출과 이익이 모두 증가했다.
생활가전은 시장 악화와 경쟁 심화에 따른 비용 증가로 수익성이 하락했다. 하만은 전장사업 매출 증가와 견조한 소비자 오디오 판매로 2분기 연속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환영향은 달러화의 강세가 부품 사업에 긍정적으로 작용하면서 전분기 대비 500억원 수준으로 영업익에 긍정적 효과를 줬다는 분석이다. 작년 4분기 연간 법인세 비용이 연결재무제표상 감소한 것은 자회사 배당금 이중과세 방지를 위한 세법 개정에 따라 단순 회계 처리한 결과다.
삼성전자는 올해 1분기도 부진한 업황이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삼성전자는 "1분기는 글로벌 정보기술(IT) 수요 부진과 반도체 시황 약세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메모리는 고객사 재고 조정이 지속되는 가운데 신규 CPU 출시에 대비해 서버·PC용 더블데이터레이트(DDR)5 수요 대응을 위한 준비를 확대하는 한편 LPDDR5x 등 모바일 고용량 제품 수요에도 적극 대응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어 "올해는 거시경제 불확실성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단기적 시황 약세가 이어지다가 하반기에는 수요가 회복되기 시작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메모리 반도체는 신규 CPU 본격 확대에 따른 DDR5 수요에 적극 대응하는 가운데 제품 믹스 최적화를 통해 서버·모바일용 고용량 제품을 중심으로 수요 성장세에 적기 대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업계와 시장 참여자들은 실적 발표 이후 이어지는 콘퍼런스콜(전화 회의)을 주목하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 산업의 유례 없는 침체기에 실적이 수직낙하한 상황에서 삼성전자가 "인위적 감산은 없다"던 그간의 입장을 고수할지, 아니면 감산 카드를 꺼내들지에 관심이 쏠린다.
김은지 한경닷컴 기자 eunin1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