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고금리와 고물가로 가계와 기업이 어려움을 겪을 때 이자수익 확대에 힘입어 나홀로 호황을 누리던 금융권을 향한 시선은 곱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직접 나서 “금융 소비자의 이자 부담이 가중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서민금융 지원 역할을 강조했다.
은행권이 그동안 대출금리를 인하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최근 기준금리 상승세가 둔화하면서 정부의 금융정책 우선순위에도 변화가 생기는 모습이다. 윤 대통령은 30일 “작년에는 리스크 관리로 인해 금융산업 육성에 집중할 여력이 없었으나 올해부턴 금융산업의 선진화, 국제화를 본격적으로 생각해야 한다”며 “우리의 직접 금융시장이 더 발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관 금융권 수장들 참석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부터 청와대 영빈관에서 금융위원회 신년 업무보고를 받은 뒤, 100여 명의 참석자와 ‘끝장토론’을 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뿐 아니라 한덕수 국무총리,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등 경제당국 수장들이 총출동했다. 윤종규 KB금융 회장,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 등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들과 교수·연구위원 등 전문가 그룹도 참석했다.윤 대통령은 모두발언을 통해 “작년에 국민들께서 많이 고통을 감내하셨지만 파국을 면해가면서 산업·실물 경제에 대한 적기 금융 지원, 서민에 대한 금융 지원 대책들이 원만하게 이뤄진 것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이어 올해는 ‘산업 육성’에 방점을 두겠다며, 금융위가 ‘금융산업 육성부처’가 돼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작년 7월 제4차 비상민생경제회의에서 언급한 미국 보스턴 바이오 클러스터 사례를 재차 강조한 점이 눈길을 끌었다. 윤 대통령은 “보스턴의 경우 세계적인 의약회사와 이를 지원하는 법률회사, 회계법인, 컨설팅사, 금융투자 회사가 모여 있다”며 “성장하는 기업들을 지원하고 다양한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금융산업을 더 국제화시키고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고 했다. 즉 대덕연구단지와 KAIST 등이 있어 많은 산학연계가 이뤄지고 있는 대전에도 고품질 서비스를 제공할 금융투자 회사들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금융산업 육성 위한 규제 완화”
금융위의 이날 업무보고 내용 중에도 금융산업 육성 관련 비중이 작지 않았다. 금융위는 금융회사의 비금융 업종 자회사 출자 규제를 완화하고 부수업무 영위를 허용하겠다고 보고했다. 또 핀테크 지원 확대, 자본시장 선진화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최근 금융권의 화두인 지배구조 관련 메시지도 내놨다. 윤 대통령은 “주인이 있는 기업의 경우 ‘스튜어드십(주주 의결권 행사)’이 과도하게 작동되면 ‘연금 사회주의’가 될 것”이라며 “(반면) 국방보다 중요한 공공재인 은행이 공정하고 투명한 거버넌스를 구성하는 데 정부가 관심을 보이는 것은 관치가 아니다”고 했다. 또 “(이를 통해 선출된) 경영진이 경영활동을 하면 기업 및 우리 사회의 비용과 수익을 서로 일치시킬 수 있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리스크 관리에 대한 지속적 관심도 당부했다. 금융위는 오는 3월부터 다주택자 등의 주택담보대출을 허용하기로 한 데 이어 추가 대출 규제 완화 가능성도 시사했다. 등록임대사업자를 대상으로 담보인정비율(LTV) 상한을 높이거나 1주택자의 LTV를 추가로 확대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기로 했다. 긴급 생계비 대출을 도입하고 자영업자 저금리 대환 프로그램 대상에 기존 사업자대출뿐 아니라 일정 한도의 가계대출을 포함하는 등 취약계층 지원도 강화한다.
이인혁/오형주 기자 twopeo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