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디벨로퍼(부동산 개발업체) 대표님과 증권사 임원과 식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화두는 부동산 시장 전망이었습니다. 개발업체 대표님의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최근 최저 기온이 영하 15도까지 떨어질 정도로 추웠습니다. 체감 기온이 영하 20도라고 해서 겨울로 돌아가는 건 아닙니다. 사실은 조금씩 봄이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우리 업(부동산개발업)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동산 시장 침체의 골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지난해 중반기부터 전국의 아파트값이 하락하기 시작했습니다. 실거래가격은 지역에 따라 최대 30% 가까이 빠지기도 했습니다. 기존 아파트 가격 하락은 거래 절벽으로 이어지고 미분양 급증과도 연결됐습니다. 지난해 11월 전국 미분양 규모는 6만가구에 근접했습니다. 아파트 매매수요가 사라져 거래량은 역대 최저치를 갈아치우는 분위기입니다.
부동산 시장 침체가 PF(부동산프로젝트 파이낸싱) 대출 부실 우려로 이어졌습니다. 레고랜드 사태 이후 여의도 금융시장에 자금 경색으로 단기 유동성 시장이 붕괴 직전까지 내몰렸습니다. 일부 건설사는 PF 대출 만기가 도래해 간신히 부도 위기를 넘겼습니다. 그 와중에 개발 초기 단계의 프로젝트는 브릿지론과 본PF 조달에 애를 먹으면서 사실상 사업이 중단되다시피 했습니다.
주택 시장 어디를 봐도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 같습니다. 한겨울 엄동설한입니다.
부동산 시장도 사이클(주기)이 존재합니다. 가격이 한없이 오를 수 없고, 또 한없이 내릴 수도 없습니다. 상승기를 지나 과열기에 정점을 찍고 하락기와 침체기에 바닥을 다집니다. 그 주기가 10년일 수도 있고, 좀 더 짧거나 길 수도 있습니다.
지난해 부동산 시장은 급격한 하락기를 맞았습니다. 거래 절벽 속에 가격 급락으로 시장의 불안이 가중됐습니다. 패닉(공포)이 시장을 지배한 셈입니다.
하지만 정부가 시장 연착륙을 위해 세금과 공급 관련 정책을 꾸준히 내놨습니다. 특히 ‘1·3 부동산 대책'으로 불리는 국토부 업무보고에서 규제지역 해제(서울 강남 3구와 용산구만 유지)와 분양가 상한제 지역 완화, 전매제한과 실거주 의무 완화, 중도금 대출 상한 폐지 등 파격적인 규제해제책을 내놨습니다. 과열기 때 마련된 인위적인 규제가 많이 원상회복 과정에 있습니다.
부동산 가격 조사 기관에서 내놓는 매주 주간 시황에 따르면 올들어 하락 폭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아직 가격이 내리고는 있지만 낙폭이 매주 조금씩 줄어들어 바닥에 대한 기대감도 조금씩 증가하고 있습니다. 물론 여전히 금리와 경기 침체 변수가 남아 있습니다. 이들 변수의 방향성이 명확해질 때 수요자와 공급자가 좀 더 적극적으로 시장에 참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시장이 바닥을 다지는 가운데 거품과 부실의 잔재는 걷어내야 합니다. 공급자 측면에서 책임져야 할 부분은 감당해야 하고, 고평가된 분양가나 과대한 조직의 구조조정도 뒤따를 수 있습니다.
"계절이 바뀌면서 지난해 잎은 떨어지고 썩어야 새로운 잎이 납니다"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시장이 다시 정상적인 흐름으로 돌아오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단계입니다. 사회적 비용을 투입할 때는 그만큼의 대가가 필요합니다. 어쨌든 부동산 시장에도 봄은 오고 있습니다.
김진수 기자 tru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