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현장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이 최고경영자(CEO)만 처벌하도록 만들어졌다는 아우성이 끊이지 않는다. 예기치 못한 사고까지 1년 이상의 징역을 부과하는 것은 선진국과 비교해도 지나치다는 지적이다. 대응 여력이 부족한 50인 미만 기업에 대해선 법 적용을 유예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힘을 받고 있다.
25일 대전에서 건설 및 기계 장비업체를 운영하는 A대표는 "중대재해법이 너무 겁이 나 선진국 산업안전 법률을 다 알아봤더니 전부 법정형이 최대 징역 3년 이하"라며 "한국만 징역 1년 이상"이라고 강조했다. 중대재해법의 형량(징역 1년 이상)은 '촉탁·승낙 살인죄'와 '불법 마약 재배'와 같은 수준이다. 미국, 영국, 일본, 독일, 프랑스 등 선진국 어디에서도 산업재해에 대해 징역 하한을 둔 곳은 전무하다.
전문가들은 산업 안전에 노사 공동의 책임을 강조해야 실질적으로 산재 발생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산업안전 전문가인 이상철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선진국은 아무리 강한 규제로도 사망사고가 줄지 않자 자율규제, 노사 공동책임으로 정책 패러다임을 전환했다"고 말했다. 실제 영국은 기업이 스스로 자율규제를 만들어 지키면 산업안전 법규를 지킨 것으로 간주하고 독일은 근로자 처벌 규정을 담아 노사 공동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임우택 한국경영자총협회 본부장은 "미국도 안전 규정을 어긴 근로자에 대해 강력한 징계 조치를 하고 있지만 한국은 강성 노동조합 영향으로 그렇지 못하다"며 "선진국일수록 노조가 안전에 대해 강한 책임의식을 지닌다"고 강조했다.
50인 미만 영세 사업장에 대해 법 적용 유예기간 연장도 논의가 시급한 상황이다. 중기중앙회 조사결과 50인 미만 사업장의 93.8%가 '준비기간 부여 또는 법 적용 제외'가 필요한 것으로 집계됐다. 경남의 한 용접기자재 업체 B대표는 "원자재값 상승, 인력 부족, 금리 인상, 대기업 공기 단축 요구 등 당장 눈앞에 닥친 압박이 많은데 중대재해법까지 대응할 자금, 시간, 인력 여력이 없다"고 토로했다.
정부는 올해부터 50인 미만 사업장 1만6000개소에 대해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컨설팅을 지원한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지원물량이 전체 사업장수 대비 약 2%에 불과한 상태다. 이명로 중기중앙회 스마트일자리본부장은 "20조원 넘게 쌓인 산업보험기금을 활용해서라도 정부가 영세기업의 안전 기반 확보에 적극 나서야한다"고 강조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개정을 통해 근로자의 책임과 의무를 명확히 하고 안전 수칙 미준수 시 처벌 등 불이익 조치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불명확한 의무를 알아서 이행하도록 맡겨놓고 사고 발생 시 사업주에 무한 책임을 강조하는 '귀에 걸면 귀걸이'식 규제도 조속히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중기중앙회 조사 결과 중소기업의 80.3%는 중대재해법에 대해 폐지 또는 산업안전보건법과의 일원화 등으로 개선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
강경주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