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국내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던 신용보험이 고금리와 경기 불황을 타고 판매가 급증하고 있다. 신용보험이란 대출 고객이 사망이나 상해 등의 사고로 채무를 변제할 수 없게 된 경우 보험사가 대출액의 전부 또는 일부를 갚아주는 상품이다.
신계약건수 1년 새 70%↑
24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BNP파리바카디프생명의 신용보험 신계약 건수는 2020년 4918건에서 2021년 2만2987건, 작년 4만985건으로 급증하고 있다. 금리 상승기였던 2018년 3만7795건도 넘어서 사상 최대 규모다. BNP파리바카디프생명은 2002년부터 방카슈랑스와 보험대리점(GA), 핀테크 등의 채널을 통해 신용보험을 판매해온 업계 선두주자다. 최근 몇 년 새 핀다와 케이뱅크, 신한은행 등과 잇달아 업무협약을 맺고 단체 신용보험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수요가 늘면서 그동안 관련 상품을 취급하지 않던 다른 보험사로도 판매가 확대되고 있다. 메트라이프생명은 작년 6월 기업은행과의 제휴를 통해 5년 만에 신용보험 판매를 재개했다. 옛 KB생명(현 KB라이프)도 작년 말 국민은행과 제휴보험 형태로 신용보험을 내놨으며, 교보라이프플래닛생명은 신규 상품 출시를 준비 중이다. 손해보험사 중에선 삼성화재, DB손해보험, KB손해보험, 신한EZ손해보험 등이 신용보험을 취급하고 있다. BNP파리바카디프생명 관계자는 “지난해 시장금리가 급등하면서 ‘빚의 대물림’ 우려가 커지자 신용보험에 대한 관심도 자연스레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돈을 빌려준 금융회사 입장에서도 신용보험에 가입하는 차주가 많아지면 대출금 회수에 따른 비용과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신용보험이 경기 하강을 막는 완충재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독일 민간 경제연구소인 RWI는 신용보험이 채무상환 리스크를 줄여 경제 위기 상황에서 민간 소비 위축을 막아주는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분석했다.
“판매 규제 완화돼야”
미국 영국 일본 등 해외 선진국에선 대출 시 신용보험 가입이 보편화돼 있지만 국내에선 아직 걸음마 단계다. 판매 규제도 신용보험 활성화를 막는 주된 걸림돌 중 하나다. 특히 은행 대출 창구에서 보험 가입을 권유하는 것은 금융소비자보호법상 불공정 행위에 해당한다. ‘꺾기(구속성 금융상품)’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탓이다. 만약 은행이 보험료를 부담하는 단체보험에서 보험료가 대출금리에 포함된 것으로 해석되면 ‘끼워팔기’로 간주될 수 있다. 은행도 모집 수수료는 적은 대신 민원 발생 우려가 커 신용보험 판매에 소극적이다.다만 제도 개선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국회에는 은행 등에서 신용보험처럼 대출 상품과 직접적인 관련성이 있고 금융소비자 보호 효과도 있는 보장성 상품을 권유하는 것을 부당권유 행위의 예외로 두는 내용의 법 개정안(윤관석 더불어민주당 의원 대표 발의)이 제출돼 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도 작년 국정감사에서 신용보험 활성화를 위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최승재 국민의힘 의원의 질의에 공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인혁 기자 twopeo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