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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들 "모셔야 이긴다"…귀한 몸 된 전시해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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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조각상에 천이 씌워져 있죠? 다음에 오시면 다른 조각상이 천으로 덮여 있을 거예요. 사소한 변화지만 이 천 하나가 없다면 이곳은 항상 고정된 공간이 되는 거죠. 하지만 올 때마다 다른 조각상이 하나씩 가려져 있으면 ‘다음엔 이걸 못 볼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현재에 더욱 집중하게 되는 겁니다.”

지난 16일 오전 11시 서울 신천동 롯데월드타워 7층 롯데뮤지엄. 여러 개의 조각상 중 하나에 천이 씌워진 작품 앞에서 김찬용 도슨트(전시해설가·38)가 작가의 의도를 설명하자 관람객 사이에선 ‘아~’ 하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평일 오전인데도 이곳에서 열리고 있는 ‘마틴 마르지엘라’ 전시는 도슨트 프로그램을 듣기 위한 관람객으로 항상 북적인다. 김 도슨트는 “주말이면 한 타임에 50명 넘게 참석하기도 한다”고 했다.

마틴 마르지엘라 전시는 미술관들이 ‘도슨트 모시기’에 열을 올리는 이유를 단번에 보여준다. 도슨트를 고용하는 것 자체가 전시회의 품격을 높여준다는 인식을 갖게 하는 데다 유명 도슨트의 강력한 팬덤으로 전시 흥행에도 도움을 얻을 수 있어서다.
○전시 문턱 낮춰주는 도슨트
도슨트는 예술가와 일반 관람객을 이어주는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 작가나 큐레이터의 창작·기획 의도를 대중이 이해하기 쉽도록 풀어서 설명해준다. 7년째 전업 도슨트로 활동하는 정우철 도슨트는 “3~4년 전만 해도 도슨트는 자원봉사나 단기 아르바이트로 하는 게 대다수였지만, 미술품 전시 수요가 커지면서 전업으로 활동하는 사람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롯데뮤지엄에서 열고 있는 마르지엘라의 대규모 개인전은 도슨트를 잘 활용한 대표적 사례다. 패션 브랜드 메종 마르지엘라의 창립자이자 순수 예술가인 마르지엘라의 작품은 ‘난해하다’는 평가를 받기 일쑤다. 작품이 놓여 있던 ‘흔적’만 전시하는가 하면, 앞뒤가 온통 머리카락으로만 뒤덮인 사람 머리를 전시장에 놓기도 한다. 작품 옆엔 제목 한 줄만 있을 뿐, 그 흔한 작품 설명조차 없다.

어려운 전시지만 관람객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도슨트다. 롯데뮤지엄은 매일 세 번씩 도슨트 프로그램을 진행해 전시 문턱을 낮췄다. 도슨트마다 각자 중점적으로 소개하는 작품도 다르다. 어떤 도슨트에게 듣는지에 따라 전시를 색다르게 즐길 수 있는 셈이다. 롯데뮤지엄 관계자는 “처음엔 주중에만 도슨트 프로그램을 진행했지만, 인기가 많아지면서 주말에도 확대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팬덤으로 관람객 유치까지
롯데뮤지엄뿐만이 아니다.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리고 있는 ‘앙드레 브라질리에’ 전시도 ‘스타 도슨트’인 정 도슨트, 최예림 도슨트 등을 앞세워 전시해설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최근 열린 마이아트뮤지엄의 ‘호안 미로’ 전시, 동대문디자인플라자뮤지엄(DDP)의 ‘장 줄리앙’ 전시도 도슨트 효과를 톡톡히 봤다.

도슨트를 향한 미술관들의 애정에는 경제적인 이유도 있다. ‘도슨트 팬덤’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한 미술관 관계자는 “유명 도슨트는 자체 팬덤이 있어 도슨트를 보기 위해 전시를 일부러 찾기도 한다”며 “활발하게 활동하는 전업 도슨트가 20명 안팎이다 보니, 미술관들이 유명 도슨트를 미리 확보하기 위해 경쟁을 펼친다”고 말했다. 미술계 관계자는 “도슨트 모시기가 중요해지면서 몸값도 치솟고 있다”며 “유명 도슨트를 부르려면 많게는 하루에 50만원 이상이 든다”고 귀띔했다.

최근 들어서는 도슨트를 찾는 곳도 다양해지고 있다. 최 도슨트는 “명품 브랜드들이 VIP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프라이빗 전시 투어나, 미술품 관련 홈쇼핑에서 전문성을 더하기 위해 도슨트를 찾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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