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과 대형마트가 두려워하는 품목이 있다. 바로 스팸이다. 경기가 어려울 때 설날 선물로 스팸과 같은 5만원 이하 저가 제품이 많이 팔리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유통업계에서는 스팸과 같은 통조림 판매량으로 불황의 신호를 감지한다. 백화점 관계자는 “스팸 판매량은 어두운 경제전망을 반영하는 지표”라며 “주머니가 가벼운 소비자들이 저렴한 제품을 찾는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스팸이 제일 잘 팔려"
백화점과 대형마트 등 유통기업들은 올해 첫 연휴를 맞아 가라앉은 경기를 체감하고 있다. 고가 상품을 주로 판매하는 시중 백화점은 작년 최고 매출을 올렸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매출이 2조8398억원을 기록하면서 전년 대비 13.9% 상승하는 등 백화점 업계는 지난해 최고 매출을 기록했다.하지만 새해 들어 백화점을 찾는 방문객들이 뚝 끊겼다. 한 백화점 관계자는 “연말 최대 성수기가 끝나고 나니 방문객들의 발길이 끊겨 실적이 급격히 하락한 것을 체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얼어붙은 소비심리는 통계에서도 나타난다. 올해 1~3월 소매유통업 전망이 집계 이래 최저로 조사됐다.
대한상공회의소가 백화점과 대형마트, 편의점 등 소매유통업체 500개 사를 대상으로 1분기 소매유통업 경기전망지수(RBSI)를 조사한 결과 전망치가 64로 집계됐다. 이 수치가 100보다 낮으면 지난 분기보다 시장 상황이 어려워질 것으로 보는 업체가 많다는 의미다. 2002년 1분기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금융위기 이후 2009년 1분기는 73, 202년 2분기에는 66으로 조사됐다.
프리미엄 상품을 주로 판매하는 현대백화점은 설 선물 세트 매출 상승률이 전년 대비 설 선물세트 매출 증가율은 3.4%에 그쳤다. 작년 롯데·신세계·현대백화점 설 선물 매출이 전년 대비 약 50% 오른 것과 비교되는 수치다.
5만원 이하 가성비 설 선물세트
물가가 오르면서 설 선물 인심도 박해지고 있다. 실용적인 ‘가성비’ 선물세트가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해 샤인머스캣 등 고가 과일 선물들이 인기를 끌던 것과 차이가 크다.
이마트가 지난달 1일부터 이달 9일까지 집계한 선물 세트 사전예약 판매량을 보면 5만원 이상 10만원 미만의 선물 세트 매출이 지난해 설 대비 45.1% 증가했다. 5만원 미만 매출은 11.3% 증가했다. 20만원 프리미엄 세트 매출은 6.0% 증가에 그쳤다. 가성비 제품인 스팸 참치 등 통조림 선물세트는 11.6% 증가했다.
롯데마트도 마찬가지다. 10만원 이상 선물세트 성장률은 5%에 그쳤다. 대신 5만원 미만 선물세트 판매량은 20% 늘어났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가성비 B+ 과일 상품을 판매해 소비자의 설날 체감 물가 부담을 덜고 있다”고 말했다.
티몬 등 온라인 쇼핑몰에서도 3만원대 초실속형 상품 매출이 늘어났다. 티몬이 지난 1일부터 13일까지 고객들의 설 선물 구매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3만원 미만 ‘초실속형’상품 매출이 전체의 60%를 차지했다. 지난해 설과 비교하면 10% 포인트 상승한 수준으로, 5만원 미만으로 범위를 확대할 경우 전체의 76%에 이른다.
배정철 기자 b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