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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파이 업체가 "웹3 하느라 바쁩니다"…CES서 밀려난 암호화폐 [빈난새의 한입금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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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화폐는 뒷전이었습니다. 일주일 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막을 내린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 'CES 2023' 얘기입니다.

지난 5~8일 열린 올해 CES에선 지난해에 이어 '암호화폐 & 대체불가능토큰(NFT)'이 주요 토픽으로 선정됐습니다. 하지만 정작 암호화폐를 전면에 내세운 전시는 좀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대신 블록체인 기술과 암호화폐, NFT는 올해 주요 트렌드로 떠오른 '웹3.0' 정신을 구현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로서 스스로를 포지셔닝했습니다. 크리스틴 스미스 블록체인협회 회장은 CES 2023 '사용자에게 권력을' 세션에서 "블록체인이 마치 투기적 성격이 짙은 암호화폐의 근간으로만 인식됐던 과거에서 벗어날 때"라며 "블록체인 기술과 크립토 네트워크는 웹3.0의 초석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루나·테라USD 사태, FTX 파산 등 지난해 암호화폐 시장에서 벌어진 각종 대형 사고를 지우려는 시도 같기도 했습니다.
장면1: 코인데스크의 '웹3.0 스튜디오'
이를 보여주는 장면 중 하나는 올해 암호화폐·블록체인 전문매체 코인데스크가 CES에 차린 스튜디오의 이름입니다. 이 매체는 CES를 주최하는 미국소비자기술협회(CTA)와 파트너십을 맺고 올해 처음 '웹3.0 스튜디오'를 만들었습니다.


코인데스크는 지난해 FTX의 부실한 재무 구조와 그 계열사 알라메다리서치와의 수상한 자금 거래에 대한 의혹을 제기한 업계 유력 매체입니다. 미국 최대 블록체인 지주회사이자 암호화폐 시장 '큰손'인 디지털커런시그룹(DCG)의 계열사이기도 합니다. 이런 코인데스크가 전통 제조기업이 대대로 차지했던 CES의 핵심 전시장에 스튜디오를 차린다는 소식은 암호화폐 업계에서도 관심사였는데, 그 스튜디오 이름에 '크립토'나 '블록체인' 등이 아닌 '웹3.0'이 들어간 것입니다.

행사 기간 중 코인데스크 측 진행자는 웹3.0 스튜디오를 찾은 스티브 코닉 CTA 시장 리서치 담당 부회장에게 "올해 CES에서 암호화폐는 잘 보이지 않는다"는 질문을 직접 던지기도 했습니다. 코닉 부회장은 이에 대해 "암호화폐는 탈중앙화된 거래를 원하는 소비자들에게 여전히 매력적인 기술"이라며 "웹3.0과 메타버스의 활용도가 높아지면 암호화폐도 계속 성장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웹3.0을 현실화할 도구로서 암호화폐의 가능성에 방점을 찍은 답변이었습니다.
장면2: "웹3.0 하느라 바쁩니다" 부스 비워둔 디파이 업체
올해 CES에선 기존 암호화폐·NFT 업계의 '빅 네임(거물)'들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FTX·셀시우스네트워크·블록파티 등이 직접 전시 부스를 내거나 세션 토론자로 참여했던 지난해 CES와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였습니다. 이들 업체는 공교롭게도 지난해 이용자 자금을 횡령하거나(FTX·블록파티) 충분한 준비금 없이 이용자가 맡긴 자금을 담보로 대출을 해온 사실(셀시우스)이 줄줄이 밝혀진 곳들이죠.

그나마 CES에 참여한 업체들은 FTX 사태로 다시 부상하고 있는 하드웨어 지갑이나 실생활에 적용할 만한 암호화폐 기반 결제 서비스, 웹3.0 시대에 대응할 블록체인 인프라 솔루션 등을 앞세운 곳이 많았습니다. 확장성 문제가 있는 자체 블록체인이나 쓰임새가 불분명한 토큰을 선전하는 곳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해킹이나 무담보 암호화폐 대출 플래시론을 이용한 공격 등에 수 차례 취약성을 드러낸 디파이(탈중앙화 금융) 서비스도 이번 CES에선 존재감이 거의 없었습니다. 영국의 디파이 네트워크 업체 라딕스는 "진짜 작동하는 웹3.0의 미래를 만드느라 바빠서 여기에 없다"는 패널만 세워둔 채 부스를 아예 비워놨습니다.
장면3: "블록체인 ≠ 암호화폐...다시 기본으로"
올해 CES에 참여한 블록체인·암호화폐 업계에선 지난해 벌어진 수많은 사고와 일탈을 극복하고 보다 성숙한 시장으로 나아가려는 의지가 엿보였습니다. 자성의 분위기도 짙었습니다. 'NFT의 리스크와 윤리' 'NFT 거품을 넘어서' '크립토 윈터에서 따뜻하게 살아남는 법' '당신의 암호화폐를 통제하는 법' 등 암호화폐와 NFT를 주제로 열린 컨퍼런스 세션들의 제목만 봐도 알 수 있었습니다.

디파이와 NFT의 대중적 확산, '불공정하고 비싼' 대형 은행의 대항마로서의 암호화폐의 장밋빛 미래를 주로 논의했던 지난해 CES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습니다. 지난해 이용자들에게 돈을 돌려주지 못한 채 파산한 셀시우스의 투샤르 나드카르니 최고성장제품책임자(CGPO)가 연초 CES 2022 '암호화폐 해독하기' 세션에서 자신들을 "대형 은행에서 버림당한 이들을 위해 공정한 이자율과 제로 수수료, 빠른 거래를 갖춘 플랫폼"이라고 소개했던 사실을 상기해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론 해먼드 블록체인협회 대관 담당 이사는 코인데스크와의 인터뷰에서 "블록체인 산업은 이제 다시 기본으로 돌아와 기술에 집중하게 됐다. 암호화폐의 가격은 예전만큼 관심사가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바이낸스 BNB체인의 비즈니스매니저 알렉스 킴도 "'크립토 윈터'라지만 블록체인·암호화 기술을 상용화해 확장성을 키우려는 노력은 지금이 가장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고 했습니다.
부록: 실생활의 문제를 해결하는 블록체인 기술들
올해 CES에선 블록체인 기술이 '투기적 암호화폐'를 넘어 우리의 실생활에 체감할 수 있는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서비스들이 많이 등장했습니다. 그 선봉엔 한국 스타트업들도 있었습니다.


CES 2023에서 최고 혁신상을 받은 지크립토의 '지케이보팅(zKVoting)'은 퍼블릭 블록체인을 활용한 투표 시스템에서 영지식 증명(Zero Knowledge Proof) 기술을 최초로 상용화한 앱입니다. CTA는 CES 개막날 지케이보팅을 "인류가 당면할 문제를 해결할 3대 기술"로 조명했습니다.

영지식 증명은 블록체인에서 거래를 할 때 상대방에게 어떠한 정보도 제공하지 않은 채 자신이 특정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기술입니다. 지크립토는 이를 비밀 유지가 철칙인 투표에 활용, 유권자의 신원과 투표 내용 등의 정보가 완벽히 보호되도록 했습니다. 검증자는 등록된 유권자가 투표했다는 사실만 알 수 있을 뿐 누가 어디에 투표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지크립토는 영지식 증명 기술 권위자인 오현옥 한양대 교수와 김지혜 국민대 전자공학부 교수가 공동창업한 블록체인 전문 스타트업입니다. 오 대표는 "투표함에 들어간 표는 누구도 수정할 수 없고, 모든 유권자는 자신의 표가 개표에 제대로 반영됐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며 "비밀선거 원칙을 가장 잘 지킬 수 있는 기술"이라고 소개했습니다.

CES 현장에서 지크립토의 전시 부스를 직접 찾은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실제 선거에서 활용될 수 있을지 선거관리위원회와 검토해봐야겠다"고 관심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빈난새 기자 binther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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