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11일 부산을 찾아 정부 주도의 과학기술 지원책에서 벗어나 지역 중심의 지원 체계를 마련하겠다고 선포했다. 정부 부처 장관이 직접 지역을 방문해 정책을 알린 것은 이례적이다. 국내 최초로 설립된 부산산업과학혁신원(BISTEP·비스텝)과 같은 지역 중심의 연구개발(R&D) 전담기구가 전국적으로 확산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평가다. 비스텝의 창업청 전환을 시도하는 부산시의 셈법도 복잡해질 전망이다.
이 장관은 이날 과기정통부 주관으로 부산 동구 아스티호텔에서 열린 ‘지방과학기술진흥 종합계획 간담회’에서 “지방의 청년 유출과 대학 경쟁력 저하 등을 해소하기 위해 지방 중심의 과학기술 지원체계를 마련할 것”이라며 “부산에서 운영 중인 비스텝과 같은 기관을 전국 17개 시·도에 정착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겠다”고 강조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과기정통부 관계자를 비롯해 박형준 부산시장, 이수태 파나시아 회장, 대전시와 경기·경상북도 연구개발 정책 책임자가 참석했다.
이 장관이 직접 부산을 방문한 것은 과학기술 정책을 지방 중심으로 개편하는 데 부산이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부산시 관계자는 “지방 최초로 지역과학기술진흥계획을 자체 수립해 정부 정책에 대응했다”며 “지방 주도 정책으로의 대전환이 이뤄짐에 따라 과기정통부에서 부산시의 사례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고 설명했다.
과기정통부는 지난해 지역 과학기술 분야 최상위 계획인 제6차 종합계획을 수립했다. 정부가 계획을 세우고 지방이 실행하던 과거와 달리, 지방이 직접 계획을 수립해 정부에 전달하고 지원받는 방식으로 바뀐다. 주목할 점은 비스텝의 역할이다. 과기정통부는 연내 지역과학기술혁신법을 제정해 비스텝과 같은 지방 중심의 연구개발 평가기관을 광역자치단체마다 설립하도록 유도할 방침이다. 기관을 설립한 자치단체에 재정을 지원하는 게 골자다.
2015년 비스텝이 설립된 이후 부산시 과학기술정책은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는 평가다. 2015년 12위에 머물렀던 부산의 지역과학기술 혁신역량 순위는 2021년 9위로 올랐다. △파워반도체(836억원) △클라우드 서비스(1150억원) △탄성 소재 1·2차(3368억원) △수산식품산업(813억원) 등 부산시가 육성하는 주요 산업군의 예비타당성조사 대응 사업에 비스텝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비스텝의 역할론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창업청 전환을 추진하는 부산시의 계획은 장기화될 전망이다. 시는 이성권 경제부시장을 주축으로 창업청 설립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할 방침이다. 김형철 부산시의회 의원(국민의힘)은 “창업청을 별도로 설립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비스텝 전환 문제 역시 창업청 설립의 목적에 맞지 않아 계획 수립에 상당한 기간이 소요될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민건태 기자 mink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