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최근 지병으로 사망했다. 상속재산으로 2억원 상당의 금융재산을 남겼다. 유가족으로 자녀인 B씨와 먼저 보낸 자녀 C씨의 딸인 손녀 D씨가 있다. 이 경우 상속인은 누가 될까. 민법에 따르면 상속인이 될 직계비속이나 형제자매(피대습자)가 상속개시 전에 사망하거나 결격자가 된 경우, 그의 직계비속이나 배우자(대습상속인)는 피대습자와 동일한 순위의 상속인이 돼 피대습자에게 예정되고 있는 상속분을 상속한다(민법 제1001조, 민법 제1003조 제2항). 따라서 B씨와 대습상속인 D씨는 공동상속인 지위에서 상속재산을 분배받는다. 상속재산 2억원은 B씨와 D씨가 각각 1억원씩 상속받게 된다.
그런데 D씨가 부친 C씨 생전에 조부모인 A씨로부터 18억원 상당의 아파트를 증여받은 경우라면 결론이 달라질까?
달라질 수 있다. 공동상속인 사이에 구체적 상속분을 정할 때 공동상속인 중에 피상속인으로부터 재산의 증여 또는 유증받은 특별수익자가 있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 공동상속인들 사이의 공평을 기하기 위해 그 수증재산을 상속분의 선급으로 다뤄 상속분을 산정할 때 이를 고려한다(민법 제1008조). 만약 D씨가 생전에 증여받은 아파트가 상속분의 선급으로 인정된다면, D씨는 이미 상속분을 초과하는 증여를 받은 게 된다. 따라서 현재 남은 상속재산 2억원은 모두 B씨가 상속받게 될 것이다.
D씨가 생전에 증여받은 금액이 남겨진 상속재산보다 현저히 많은 금액이다. 따라서 B씨의 유류분이 침해당했는지에 대한 검토도 필요하다. 상속이 개시되면 일정한 범위의 상속인은 피상속인 재산의 일정한 비율을 확보할 수 있는데 이를 유류분이라 한다. 유류분은 피상속인이 상속개시 당시에 가진 재산뿐만 아니라 생전의 증여재산 가액을 가산한 금액을 기초로 한다.
만약 D씨가 증여받은 아파트가 유류분 산정의 기초가 되는 재산에 포함된다고 해보자. B씨의 유류분은 피상속인 A씨의 상속개시시 재산 2억원과 생전의 증여재산 18억원을 더한 20억원 중 법정상속분인 10억원의 2분의 1에 해당하는 5억원이다. 따라서 B씨는 남겨진 상속재산 2억원을 상속받는 것에 그치지 않고, D씨를 상대로 유류분 부족액에 해당하는 3억원을 추가로 청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떤 경우에 D씨가 생전에 증여받은 아파트가 구체적 상속분 내지 유류분 산정의 기초가 되는 재산에 포함될까?
상속인이 취득한 생전 증여가 구체적 상속분 내지 유류분 산정의 기초가 되는 재산에 해당한다는 점에는 의문이 없다. 그런데 D씨처럼, 상속인이 될 자가 사망하거나 결격자인 이유로 그를 대신해서 상속인이 된 대습상속인이 취득한 생전 증여도 동일하게 취급할지가 문제 된다.
대법원은 대습상속인 D씨가 부친인 C씨가 사망한 후 피상속인 A씨로부터 증여받았다면, 공동상속인 지위에서 취득한 상속분의 선급으로 보고 구체적 상속분 내지 유류분 산정의 기초 재산에 포함한다고 본다.
하지만 D씨가 부친인 C씨가 사망하기 전에 피상속인 A씨로부터 증여받았다면, 이는 공동상속인 지위가 아닌 상태에서 증여받은 것이다. 따라서 원칙적으로 구체적 상속분 내지 유류분 산정의 기초가 되는 재산에 포함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대법원 2014. 5. 29. 선고 2012다31802 판결).
대법원 판례에 따를 경우, D씨는 대습사유(C씨 사망) 발생하기 전에 피상속인 A씨로부터 증여받았으므로 상속분의 선급으로 보지 않게 된다. 띠라서 D씨는 아파트를 증여받은 것과 무관하게 상속재산 중 1억원을 상속받을 수 있고, B씨의 유류분도 침해하지 않게 된다.
또 다른 경우의 수를 보자. A씨가 D씨에게 증여한 것이 신용불량자인 C씨의 사정을 고려해 C씨에게 증여할 의도로 명의만 D씨로 해둔 것이라면 어떨까?
대법원은 D씨에 대한 증여가 실질적으로 C씨에 대한 증여로 평가된다면, 이를 C씨의 특별수익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대법원 2007. 8. 28.자 2006스3,4 결정). 위 사안의 경우 D씨에 대한 생전증여는 실질적으로 C씨에 대한 증여로 평가될 수 있으므로, C씨의 상속인 지위를 대신하는 D씨의 구체적 상속분 내지 유류분 산정에 있어서 상속분의 선급으로 취급된다. 따라서 D씨는 상속재산을 취득할 수 없고 B씨에게 유류분도 반환해야 할 것이다.
언뜻 보기에 동일한 사례인 것 같아도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 구체적 상속분 내지 유류분 산정 과정에서 큰 차이가 발생한다. 이처럼 현상은 우리의 생각보다 복잡하고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에 제대로 파악하는 힘, 디테일이 중요하다.
결국 실력은 디테일에서 나온다. 상속인들이 상속 이후에 구체적 상속분이나 유류분을 구할 때는 물론이고, 피상속인이 상속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이러한 차이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어야 자신이 원하는 내용으로 자산을 승계할 수 있다.
조웅규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변호사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및 대학원 졸업(민법/신탁법)
제41기 사법연수원 수료
한국신탁학회 상임이사
중견기업연합회 기업승계 담당 변호사
상속신탁연구회 회장
Estate Planning Center 상속설계 본부장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