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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선 KS마크 알지도 못하는데…인증만 6개월에 신제품 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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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내 한 소형 가전업체는 전원 어댑터가 필요 없는 헬스케어 가전 신제품 출시를 포기했다. 안전 인증을 받는 데 6개월 이상이 걸리자 적잖은 자금을 투입해 소비자 불편을 줄인 디자인을 포기하고 기존 모델을 조금 손본 제품을 내놓기로 한 것이다. 이 회사 대표는 “소비자 수요에 맞춰 한 해 20~30개 신제품을 내놔야 하는데, 안전 인증 하나 받는 데만 6개월 이상 기다리라는 것은 신제품 개발을 포기하라는 말과 같다”고 10일 한탄했다.

다품종소량생산 체제를 주력으로 삼은 중소기업일수록 ‘인증 족쇄’의 부담은 더 무겁게 다가온다. 제품의 디자인과 사양을 조금만 바꿔도 전자파, 전기안전, 화학인증 등 각종 인증을 다시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시험인증기관의 전·현직 ‘먹이사슬 생태계’로 중소기업 부담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수도권의 한 생활용품업체 대표는 지난해 정부 인증을 제대로 받지 않았다며 억울하게 고발당해 수개월간 경찰조사를 받다가 최근에야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산업통상자원부 유관 시험인증기관 퇴직 임원으로부터 “동료 컨설팅사를 통해 인증을 준비하면 결과가 빨리 나올 수 있다”는 제안을 거절한 뒤 발생한 일이었다. 그는 “인증제도가 까다로울수록 컨설팅 수요로 먹고사는 인증기관 퇴직자가 많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규제 완화’라는 시대 흐름에 노골적으로 역행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국내 한 대형 문구·완구업체는 2021년 크레파스 사업을 포기했다. 같은 해 산업부가 기존 검사 품목을 9가지에서 19가지로 두 배 이상으로 확대하면서 인증 비용을 감당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이 업체 대표는 “1만원대 55색 크레파스를 팔기 위해선 수천만원의 인증 비용이 든다”며 “정부가 해외 인증엔 지원을 해주고 있지만 정작 국내 인증 비용에 대해선 지원책이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적잖은 중소기업이 잡다한 인증을 받을 필요가 없는 수출에 눈을 돌리고 있지만 국내 인증은 수출하는 데 무용지물이다. 한 중소 제조업체 대표는 “힘들게 국내 KS인증(한국산업표준)을 받고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수출을 추진해도 현지 바이어가 ‘KS인증이 뭐냐’고 되묻는다”며 “미국이나 유럽 인증을 받으면 중국, 동남아 등 어디든 수출할 수 있어 해외 인증을 받는 게 훨씬 유리하다”고 말했다.

일부 기관의 인증 심사비 ‘장사’가 도를 넘었다는 지적도 있다. LED(발광다이오드) 조명업계는 산업부 산하 한국에너지공단의 고효율 에너지기자재 인증 비용이 과도하다고 호소했다. 단순 서류심사비(인증 수수료)로 제품당 32만원을 받기 때문이다. 비슷한 제도로 분류되는 환경부 환경표시인증 신청수수료(5만원)의 6배나 된다는 지적이다. 이 수수료는 2020년과 2021년에 걸쳐 21%나 급등했다. 한국에너지공단의 인증 수수료 수입의 90% 이상은 LED 조명업계로부터 나온다.

김복덕 한국스마트조명협동조합 이사장은 “A4 용지 한 장에 소비전력, 효율 등 간단한 제품 스펙만 나열하고 번호만 발급하는 데 32만원을 받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2014년 ‘범부처 인증제도 개선 방안’, 2015년 ‘인증규제 혁신 방안’에 이어 지난해 9월에도 인증 유효기간을 확대하는 등 인증제 개선책을 내놨다. 하지만 중소기업이 체감할 정도의 대대적인 혁신은 아니라는 평가가 많다. 중소기업중앙회의 최근 중소제조업체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인증 애로 해소를 위해 개선이 시급한 제도(복수 응답)로 ‘인증 취득비용 부담’(64.0%)이 꼽혔고 ‘짧은 유효기간’(20.3%), ‘동일 제품에 대한 반복 인증’(19.3%) 등이 뒤를 이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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