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S 2023’에선 태양광 전지로 광합성하는 나무를 만날 수 있다. ‘차세대 태양광 전지’로 불리는 ‘페로브스카이트’로 잎사귀를 구현한 파나소닉의 전시물이다. 기후 변화 위기에 맞서 2050년까지 온실가스 순 배출을 ‘0’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이번 CES에서 지속가능성을 화두로 내세운 기업은 파나소닉뿐이 아니다. 삼성전자, SK그룹, LG 등 한국 기업들도 이번 전시에서 지구의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을 전면에 내세울 계획이다. 기업들이 기술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가 아니라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차세대 태양광 전지 '페로브스카이트'로 기후변화 맞선다
‘CES 2023’ 개막을 이틀 앞두고 3일(현지시간) 방문한 미국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LVCC) 센트럴홀에는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로 이뤄진 나무가 설치돼있었다. 일본의 가전제품·배터리 생산 기업인 파나소닉의 전시관이다. 나무의 잎사귀는 광합성을 통해 빛 에너지를 화학 에너지로 바꾸는데, 빛 에너지를 전기 에너지로 바꾸는 태양전지로 잎사귀를 표현한 것이다.태양전지 잎사귀를 만드는 데 쓰인 재료는 페로브스카이트다. 1980년대에 상용화돼 현재 가장 널리 쓰이는 실리콘 태양전지를 대체할 차세대 신소재로 지목되는 재료다. 본래 실리콘 태양전지는 넓은 평지에 설치해야 한다. 구부러지지도 않고, 무겁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태양빛을 정면으로 받지 못하면 발전량이 급격히 떨어지기 때문에 빛을 가장 잘 받을 수 있는 각도로 설치해야 한다. 사막에 거대 솔라팜을 조성하거나, 옥상이나 빈 땅, 산을 깎아 만든 부지에 주로 패널이 설치되는 이유다.
반면 ‘차세대 태양전지’로 불리는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는 기존 태양광 패널보다 가볍고, 유연하다. 기존 패널은 설치할 수 없는 벽면, 창문 어디든 설치할 수 있다. 상용화된다면 많은 공간을 확보할 필요 없이 도시 전체를 태양광 발전 시설로 바꿀 수 있게 된다.
파나소닉 측은 이번 전시물을 통해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는 앞으로 탄소배출을 줄이는데 가장 핵심적인 기술”이라며 “기존의 태양광 패널을 설치할 수 없는 곳에서도 높은 에너지 효율을 뽑아낸다”고 설명했다.
'넷 제로' 선언한 파나소닉...태양광에 집중
‘페로브스카이트 태양광 나무’는 기후변화에 대응하겠다는 파나소닉의 의지를 보여준다. 파나소닉은 지난해 CES 2022에서 ‘넷제로(net zero)’를 선언했다. 2050년까지 모든 생산업체의 온실가스 순 배출을 ‘0’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매년 파나소닉의 제품을 만들어내기 위해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량은 220만톤. 만들었다고 끝이 아니다. TV와 오디오 제품 등은 전기를 써야 작동한다. 소비자들이 파나소닉 제품을 구매해 사용할 때 들어가는 전기는 매년 8600만톤의 탄소를 만든다. 제품 생산에서 사용까지 매년 1억1000만톤의 탄소가 나오는 셈인데, 이 수치는 전세계 전기 사용량 1%의 탄소 배출량 수준이다.
이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지난해 7월에는 ‘그린 임팩트 플랜 2024’를 발표하기도 했다. 구체적으로 2025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16만톤 줄이고, 넷제로 공장을 현재 7개에서 37개까지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파나소닉은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태양광 기술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페로브스카이트의 문제점은 면적이 넓어질수록 광전환 효율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페로브스카이트 화합물을 넓은 면적에 고르게 펼쳐 코팅하기가 어려운데, 코팅이 균일하지 않으면 한쪽으로 전류가 몰리며 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아주 작은 면적으로는 유의미한 에너지를 만들어낼 수 없으니, 실제로 상용화를 위해선 페로브스카이트를 넓은 면적에 고르게 펼치는 기술이 필수적이다.
파나소닉은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집중해왔다. 2020년에는 대면적 코팅 기술을 개발해 작은 창문 넓이인 804㎠에서 광전환 효율 17.9%를 달성했다. 지금까지 200㎠ 이상의 대면적 기록 중 최고 효율이다. 지난 CES에서는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를 다양한 크기와 모양으로 인쇄해낼 수 있는 프린터도 선보였다. 반투명하게 인쇄할 수 있기 때문에, 도심의 창문 등에도 태양전지를 설치할 수 있다.
신소재를 중심으로 한 파나소닉의 태양광 사업은 더 확대될 전망이다. 탄소배출 감축의 핵심 축이기 때문이다. 다만 전통적인 태양광 패널 생산 사업에는 빨간 불이 들어왔다. 중국에 밀려 가격 경쟁력이 사라지자 지난해를 기점으로 사실상 철수에 들어간 상황이다.
'지속가능성', 이번 CES 핵심 키워드
주최측인 미국소비자기술협회(CTA)는 이번 CES의 5가지 핵심 키워드 중 하나로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을 꼽았다. CES에선 다양한 기업들이 지금 지구가 직면한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술을 선보일 전망이다.이번 CES에선 최초로 농기계 제조업체 CEO가 기조연설을 맡았다. ‘농업계 테슬라’로 불리는 존디어의 존 메이 CEO다. 기후변화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식량 수급에 차질이 생기고, 식자재 가격이 폭등하자 가장 기본적인 ‘먹고 사는 문제’의 중요성이 커진 영향이다. 존 메이는 이 기조연설에서 전쟁과 기후변화에 따른 식량 위기가 현재 인류를 어떻게 위협하고 있는지 말할 예정이다.
SK그룹은 이번 전시에서 실질적으로 탄소를 줄일 수 있는 다양한 제품과 기술을 선보인다. 미디어아트 전시를 통해 인류가 기후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는다면 직면할 암울한 미래도 경고한다. HD현대는 바다를 활용하고 변화시킬 때 어떻게 지속가능성을 고려할지에 관해 전시를 구성했다. 삼성전자와 LG도 친환경을 소재로 전시를 꾸민다.
라스베이거스=최예린 기자 rambut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