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하반기 국내 자금시장 경색은 종금사 사태를 빼닮은 측면이 크다. 악재가 더해지며 상황이 악화한 근본 배경에 금융회사의 조달-운용 간 만기 불일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만기 미스매치'가 위기 불러
자금시장 경색의 시발점이던 작년 10~11월 증권사 보증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자산유동화어음(ABCP) 거래 중단 사태가 우선 그렇다. PF ABCP는 통상 3개월짜리로 차환 발행되지만 그 기초자산은 증권사가 제공한 2~3년짜리 대출 보증(대출채권 매입 확약 등)이다. ‘단기 조달-장기 대출’로 장단기 금리차를 먹는 구조는 증권사와 종금사가 동일했다. 부동산 호황 땐 ABCP 차환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경기 위축 우려가 커지자 차환이 안 되기 시작했고 레고랜드 사태마저 터지면서 아예 시장이 마비됐다. 증권사들은 ABCP를 스스로 떠안으며 유동성을 고갈시켜갔다.작년 11~12월엔 “최소 50조원의 매물 폭탄이 쏟아질 것”이라는 공포도 살얼음판 채권 시장에 추가됐다. 170조원 규모 확정급여형(DB형) 퇴직연금 계약 교체 과정에서 기존 사업자가 새 사업자에게 현금으로 넘겨줘야 해 보유 채권을 대거 매도할 것이란 우려였다. 통상 기업과 사업자 간 퇴직연금 계약은 1년 단위로 이뤄지는데, 12월에 약 80% 만기가 몰려 있고 실제 30% 정도는 교체되기 때문이다. DB형 사업자들이 1년 계약임에도 너나없이 평균 만기(듀레이션) 2~3년의 장기채권으로 운용하는 관행이 화근이었다. 조금이라도 높은 금리를 제시해 사업자를 따내려는 무분별한 경쟁의 결과다.
신용위기로의 확대 막아야
다행히 자금시장은 상당히 안정된 채 새해를 맞았다. 정부와 한국은행의 ‘50조원+α’ 시장안정책 등이 효과를 내며 PF ABCP가 서서히 거래되고 있다. DB형 퇴직연금도 금융당국이 개입해 사업자 간 과열 경쟁을 막아 채권 매물을 최소화했다.하지만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위기를 초래한 근본 구조가 바뀐 게 없어서다. 특히 3개월마다 차환해야 하는 PF ABCP 시장은 주택경기가 더 하강하면 언제든 다시 마비 상태가 될 수 있다.
금융사들은 시장 상황이 조금이라도 좋아진 지금 조달-운용 간 만기 불일치를 최대한 줄이고 자본 확충, 자산 매각 등 유동성 확보에 적극 나서야 한다. 금융당국은 위기 재발 시 대응 방안을 마련하는 동시에 ABCP나 퇴직연금시장처럼 과도한 조달-운용 간 만기 불일치를 유발한 제도적 문제가 없었는지 살피고, 필요하면 개선해야 한다. 종금사 사태처럼 유동성 위기가 기업 연쇄 부도로 이어지는 신용위기로 확대되지 않도록 하는 게 새해 모든 금융시장 관련자들의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