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에 우리나라 대기업 임원 하는 사람 태반이 사이코패스야!”
얼마 전 연말 모임에서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서 일하는 분이 던진 ‘농반진반’의 얘기다. 물론 그분도 그 대기업의 임원이라는 게 웃음 포인트였다. 자조적인 그의 말속에, 얼마나 치열한 경쟁 속에서 그가 임원 자리에 올랐고 그 과정에서 냉혈한 소리를 들었을지 짐작이 가기도 했다. 기본적으로 임원은 아주 드물게 운이 좋아서, 어쩌다 상황이 맞아서 되는 경우 말고는 대부분 직원 시절의 성과와 유능함을 인정받아서 그 자리에 오르게 된다. 그런데 그 유능함이라는 게 사실 많은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필자가 빅데이터 MBA 과정을 공부하던 시절 인공지능(AI) 머신러닝을 배울 때 교수들이 가장 강조하던 것, 가장 유의해야 할 점으로 말하던 건 다름 아닌 ‘과적합(overfitting)’ 문제였다. 머신러닝 모델을 만들기 위해 데이터를 학습시킬 때, 자신이 가지고 있는 데이터셋에 모든 걸 맞춰 지나치게 오래 학습시킬 경우, 자신이 가진 데이터상에서의 모델 예측 정확도와 적중률 등은 모두 엄청나게 올라가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모델에 전혀 새로운 데이터가 들어오는 순간 그 모델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된다. 자신이 가진 데이터에만, 즉 전체 데이터의 부분집합에 불과한 학습 데이터에만 ‘과적합된 모델’이기 때문이다.
자, 다시 임원들 얘기로 돌아와 보자. 그들 대다수는 주로 한 회사에서 최소 20년 넘게 근무하며 그 회사의 일하는 방식, 성과평가 방식, 사람을 관리하는 방식에 너무도 익숙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매우 유능했다. 그런데 새로운 직원들이 들어오고 외부 환경의 변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새로운 정보가 많이 밀려드는 때에 20년 넘게 형성된 유능함, 즉 해당 조직·기업 ‘과적합 상태’는 혁신의 장애물이자 임원의 유능함을 곧장 무능함으로 바꿔버리는 원인이 된다.
경영학에도 이와 다른 듯하면서도 비슷한 개념이 하나 있는데 이른바 ‘성공의 함정’이다. 한 기업이 어떤 전략으로 성공한 뒤에 리더들이 그 성공을 만들어 준 방식에 도취해 상황이 변했음에도 기존의 성공 공식을 반복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머신러닝에서의 ‘과적합 문제’와 맥이 닿는 얘기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새로운 아이디어를 갖고 새로운 업무 방식과 전략을 제안하는 젊은 직원, 중간 관리자급 직원들의 말을 ‘성공한 임원’일수록 무시하게 된다. 올라오는 보고 중에서 ‘자신의 성공 공식’ ‘자신의 과적합 모델’에 맞는 정보와 아이디어만 무의식적으로, 본능적으로 취사선택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그렇게 유능함은 무능함으로 바뀌고 조직의 혁신과 전략의 변화는 멀어져간다.
이러한 과적합 상태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용기를 내어 새로운 정보와 아이디어를 받아들여 자신이 가진 성공모델의 약점을 찾고 그 모델을 수정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오류도 나고 실패도 할 것이다. 1년 단위로 성과와 실적을 평가받아 재계약 여부가 결정되는 ‘임시직원’인 ‘임원’ 다수는 그런 용기를 내기 어렵다. 단 이를 제대로 해낸다면, 그때는 임원이라는 인생의 첫 번째 성공 이후 또 한 번 비약적 발전을 해 더 큰 성공을 만들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z세대는> 고승연 저자,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z세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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