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의 귀환은 이른바 ‘돈 풀기 이론’의 사망선고나 다름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대통화이론(MMT: Modern Monetary Theory)이 영향력을 급속히 상실하게 됐다는 것이다.
MMT는 정부는 절대 파산하지 않기 때문에 인플레만 일어나지 않는다면 재정적자 걱정 없이 돈을 찍어내 사회문제 해결에 쓸 수 있다는 이론이다. ‘대안정 시대’ 인플레가 사라진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이는 사실상 정부의 공격적 재정 확장에 면죄부를 주는 이론이었다. 통화량 증가는 인플레를 촉발하고, 재정적자가 누적되면 정부가 파산할 수 있기 때문에 건전재정을 유지해야 한다는 주류경제학과도 배치됐다.
MMT는 20세기 초 기초가 마련됐지만 100년 넘게 경제학의 변두리를 맴돌았다. 그러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미국 민주당 일각에서 주목받게 됐다. 금융위기 이후 ‘제로(0)금리’나 다름없는 통화 팽창이 10년 넘게 이어졌지만 미국, 유럽 등 주요국 물가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면서다.
2020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 대유행은 MMT에 날개를 달아줬다. 팬데믹에 따른 경기침체를 막기 위해 미국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은 앞다퉈 기준금리를 낮추고 재정지출을 확대했다. 한국에서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대선 과정에서 “개인은 빚을 못 갚으면 파산하지만 국가 부채는 이월이 가능하다”며 재정지출 확대를 공약으로 내걸기도 했다. 명시적으로 거론하진 않았지만 MMT와 비슷한 논리였다.
하지만 지난해 미국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인플레가 기승을 부리면서 MMT 영향력은 급속히 허물어졌다. 물가가 치솟으면서 ‘과도한 인플레가 없다면 화폐주권을 가진 나라는 균형재정론에 얽매일 필요 없이 빚을 져도 괜찮다’는 MMT의 전제가 무너진 것이다. 미국 국제금융협회(IIF)는 지난해 11월 ‘MMT 환상의 종말’이란 보고서에서 “재정 여력은 희소하고 아껴 써야 할 귀중한 자원”이라고 지적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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