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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빔]계묘년의 자동차, '고종어차와 한국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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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년, 한국이 글로벌 자동차 주도권 잡아야

 한국의 근대 자동차 역사에서 계묘년이 처음 기억되는 때는 1903년이다. 고종이 즉위 40주년을 맞아 미국에서 포드 A형 모델을 들여왔다고 하는데 정확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일설에는 즉위식이 끝난 후 차가 들어왔고 너무 시끄럽고 불편해 고종 황제가 탑승을 꺼렸던 탓에 창고에 보관된 것으로 전해진다. 그리고 이듬해 러일전쟁이 벌어지자 누군가 몰래 처분해 사라졌다는 얘기가 구전으로 내려올 뿐이다. 그럼에도 1903년 계묘년은 한국의 자동차 역사가 시작된 해로 꼽는데 이견을 보내는 사람이 없다. ‘포드’라는 이름이 분명 언급돼 왔기 때문이다. 

 반면 국내에 공식적으로 처음 자동차가 도입된 시점은 1905년으로 봐야 한다는 역사가도 많다. 당시 민간인으로서 동학과 천도교의 지도자였던 손병희 선생이 캐딜락을 탔다는 일화가 있어서다. 이를 근거로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전시된 어차가 원래는 황실 소유가 아닌 민간인(손병희) 소유였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어쨌든 이렇게 미국에서 완성차로 들어오며 시작된 한국차의 역사는 이후 60년이 지난 두 번째 계묘년, 1963년에 도달했을 때까지 상당한 발전이 이뤄졌다. 자동차가 이미 대한민국 사회 곳곳에서 이동의 자유로움을 주었고 덕분에 산업 사회의 발전도 빨라졌다. 1963년 경향신문 4월19일자에 게재된 '자동차이야기' 칼럼은 당시 한국 내 자동차의 역할과 이미지를 잘 보여주는 내용이다. 

 게재된 기록은 다음과 같다. "자동차는 살림에 큰 도움을 주고 있으며 멀리 여행하는 사람이나 일터에 나가는 사람을 실어다 줄 뿐 아니라 불을 끄는 소방자동차, 무거운 짐을 나르는 트럭, 우편물을 나르는 우편 자동차, 길에 물을 뿌리는 물자동차 등 편리하게 사용된다. 현재 전국에 3만대의 자동차가 다니고 있으며 군대와 외국 사람 자동차까지 합치면 훨씬 많다고 한다. 시골에서 볼 수 없는 자동차는 급수차, 우편차, 살수차, 구급차, 불도저, 믹서 등인데 외국에는 잠도 자고 밥도 지을 수 있는 집같이 된 자동차도 있고 물 위에도 갈 수 있는 자동차가 있다고 한다. 영국에는 2층으로 된 버스가 있다는데 앞으로 어떤 종류가 새롭게 나올지 궁금하다"고 게재돼 있다. 자동차가 사람들의 일상 속 중요한 이동 수단임을 명확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그해 한국에선 자동차산업을 놓고 많은 갈등이 벌어졌다. 군사 정부의 자동차 국산화를 위한 일원화와 다원화 논란이다. 해외 차종의 국내 조립 방식을 추진한 정부는 차종을 가리지 않고 일원화를 추진하려 했지만 일부 국내 기업들은 미군이 민간에 내놓은 자동차를 이용하면 국산화에 한발 가까워질 수 있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어려움에 시달렸던 새나라자동차는 결국 문을 닫았다. 1963년 11월 종업원들이 밀린 임금 지급을 약속받으며 파업을 철회했지만 그해 말 한국의 외환보유고가 바닥을 드러내면서 부품 수입을 위한 외화 또한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역사를 거쳐 다시 60년이 지난 2023년 계묘년을 맞았다. 그 사이 한국차는 국내를 넘어 글로벌에서 강력한 위상을 드러냈다. 세계 시장 점유율은 7.7%(KAMA 2022 통계)에 달하고 한국 땅에서 직접 생산하는 자동차도 연간 378만대(2022년 기준) 규모에 도달했다. 게다가 이 가운데 약 230만대를 해외로 수출할 정도로 경쟁력도 키웠다. 120년 전 시작된 한국차 시간의 기억, 그리고 한국인 특유의 부지런함이 만들어 낸 기술의 축적 덕분에 이제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존재로 추격했고 성장했다. 

 그런데 우리가 빨리 따라잡으려 노력했던 내연기관 시대가 이제는 저물고 있다. 탄소 저감에 따라 이동의 동력 자체가 전기로 바뀌어가는 중이다. 1903년 휘발유자동차를 만들어 1920년 국내 신문에 진취적 인물로 소개된 미국인 '포드 씨(氏)'를 이제는 추격할 필요도, 경쟁할 이유도 사라졌다. 동력 전환 자체가 곧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고 있어서다. 그렇다면 이제 미국 신문에 한국의 '전기차 씨(氏)'가 진취적인 제품으로 소개되도록 만들어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120년 전 계묘년을 조용히 기억하면서 말이다. 

 권용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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