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를 품은 달’(2012), ‘구르미 그린 달빛’(2016), ‘킹덤’(2019)까지.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K드라마’가 세계적 인기를 끌 때마다 해외 시청자들의 주목을 한 몸에 받은 게 있다. 바로 극 중 인물들이 쓰던 ‘갓’이다. 현대물도 아닌 한국 사극 드라마가 해외에서 돌풍을 일으킨 데는 전통 한복의 매력을 한껏 살려주는 ‘K모자’도 한몫했다.
조선 사람들에게 모자는 단순한 장식품이 아니었다. 모자는 곧 명예의 상징이었다. 인사할 때 모자를 벗는 서양인과 달리, 조선 사람들은 왕 앞에서도 모자를 갖춰 썼다. 역사연구가 이승우 씨가 조선을 ‘모자의 나라’라고 부르는 이유다. 그가 펴낸 <모자의 나라 조선>은 조선 사람들이 왜 그렇게까지 모자를 사랑했는지, 조선의 모자가 어떤 변천사를 거쳤는지, 왜 갑자기 자취를 감추게 됐는지 등을 다룬다.
‘어떻게 모자만으로 책 한 권을 썼나’ 싶지만 조선 모자의 종류는 생각보다 다양하다. 신분에 따라, 성별에 따라, 상황에 따라 쓸 수 있는 모자가 각기 달랐다. 특히 모자는 신분사회 유지를 위한 도구로도 쓰였다. 사극에 자주 등장하는 흑립(갓)은 사대부나 선비만 쓸 수 있는 명품 모자였다.
서민들이 양반의 모자를 부러워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은 갓과 비슷한 모자를 만들어 쓰고 다니곤 했다. 오죽하면 성종 때 서인이 갓을 쓰는 것을 금해야 한다는 기록까지 있을까. “근래 민풍과 사습이 지나친 사치를 날로 더 해 가서, 서인 중에 무뢰한 무리가 함부로 모라(毛羅)로 만든 갓을 쓰고, (…) 청컨대 율문에 따라 엄하게 징계하소서.”
일제의 식민지배를 거치면서 조선의 모자는 급격히 자취를 감췄다. 1895년 친일파 김홍집 내각은 단발령을 중심으로 한 ‘을미개혁’을 단행했다. 단발을 한다는 것은 곧 “상투와 갓을 포기하는 것”이었다. 단발이 보편화하면서 조선 전통 모자의 자리를 중절모 등 서양 모자가 대체하기 시작했다. 모자의 역사를 담은 이 책은 조선의 역사를 자연스럽게 되짚어보게 한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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