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12월 29일 오후 4시52분
정부가 전 정권 때 임명한 소유분산 기업 최고경영자(CEO) ‘물갈이 인사’에 국민연금을 동원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 28일 KT 이사회의 구현모 대표 연임 결정에 국민연금 신임 기금운용본부장(CIO)이 즉각 반대 입장을 내놓으면서다. 지분 10.74%를 보유한 최대주주로서 목소리를 내겠다는 것이지만, 주주권 행사의 명분과 절차적 정당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9일 국민연금 등에 따르면 국민연금 서열 1, 2위인 김태현 이사장과 서원주 본부장이 잇달아 KT, 포스코 금융지주 등 소유분산 기업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금융위원회 출신인 김 이사장은 지난 8일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소유가 분산된 기업의 건강한 지배구조 문제를 진지하게 검토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 서 본부장도 27일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같은 의견을 밝히는 데 시간의 절반을 할애했다.
특히 서 본부장은 KT 이사회가 구 대표의 연임을 결정하자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는 경선의 기본 원칙에 부합하지 못한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국민연금이 특정 기업 CEO 인사에 기금운용본부장 명의의 입장문을 낸 것은 1999년 기금운용본부가 출범한 이후 처음이다.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는 경영 부실에 따른 주주 가치 훼손에 대응하는 행동이다. 하지만 사업 다변화 등으로 재임 기간 KT 주가를 90% 끌어올린 구 대표의 연임이 주주 가치를 훼손한다고 볼 수 없어 명분이 떨어진다.
국민연금 안팎에서 절차적 정당성이 훼손됐다는 평가도 제기된다. 기업의 임원 선임 및 해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자본시장법상 ‘경영 참여’에 해당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기금운용위원회의 승인과 투자목적 변경 공시가 필요하다. 국민연금 내부적으로 정해놓은 단계별 주주권 행사 프로세스도 무시됐다.
경제계에서는 “문재인 정부 시절 불거진 ‘연금 사회주의’ 논란과 뭐가 다르냐”는 지적이 나온다.
류병화/차준호 기자 hwahw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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