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 수천 채를 굴리다 전세금을 못 돌려주거나 중간에 가로챈 이른바 ‘빌라의 신’ 사건 등 전세 사기로 인한 피해가 급증하고 있다. 국토교통부가 경찰에 1차로 수사 의뢰한 전세 사기 사건만 106건, 피해액이 100억원 넘는 사기 5건에 관련된 빌라만 8000여 채에 이른다. 사기의 불똥이 튀지 않을까 초조해하는 세입자가 한둘이 아니다.
이번 사기는 집값과 전세금 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 일반적인 갭투자 문제와 양상이 다르다. 시세 파악이 쉽지 않은 신축 빌라를 수백 채 사들인 뒤, 집값보다 비싸게 전세를 놓는 ‘깡통전세’ 수법을 동원한 경우가 많다. 애초에 전세금을 가로채려는 사기행각이나 다름없다.
피해자들이 분통을 터트리는 것은 전세 확정일자를 받고 보증보험에 드는 등 각종 안전장치를 다 마련하고도 위험에 노출됐다는 점이다. 민간 보증보험은 보증 주택 수를 한 채로 제한하지만,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전세금이 집값보다 높지 않으면 임대인의 주택 수와 관계없이 임차인이 전세보증금반환보증에 가입할 수 있게 해준다. 사기범들은 이런 제도의 허점을 파고들었다.
정부는 피해 상담과 보증금 반환을 돕는다지만, 세입자의 알권리를 확대하는 등 실효성 있는 추가 대책이 필요하다. 최근 국회를 통과한 국세징수법 개정안은 세입자가 집주인 동의 없이 집주인의 국세 체납 여부를 열람할 수 있게 했다. 그러나 악성 임대인 확인은 전세계약 이후라야 가능하다는 맹점이 있다. 가격 등 빌라의 거래 정보를 자세하게 공개하는 것도 사기 피해를 줄일 수 있는 길이다. 집주인의 보증 사고 전력, 집주인이 중간에 바뀌는 경우의 정보 제공도 필요하다.
전세 사기는 부동산 경기가 나빠질 때 어김없이 불거졌다. 그럼에도 비슷한 피해가 끊이지 않는 것은 정부의 사전적·사후적 대응에 문제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정부는 국토부·법무부·행정안전부 등 부처 간 칸막이로 인한 제도적 허점은 없는지, HUG 사례처럼 사기범들에게 잘못된 신호를 주는 경우는 없는지 돌아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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