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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학영 칼럼] 2022년이 대한민국에 던지는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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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막을 내린 2022 카타르월드컵을 기억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이번 대회는 ‘축구 변방’ 아시아와 아프리카 국가들의 돌풍에서부터 아르헨티나의 극적인 우승에 이르기까지 명장면을 숱하게 배출했다. 미국 경제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은 그중 사람들의 주목을 덜 받은 한 가지 장면에 초점을 맞췄다. 결승전 종료 휘슬이 불린 순간, 아르헨티나와 맞서 싸운 프랑스의 대표선수 11명 가운데 골키퍼 한 명을 제외한 10명이 흑인이었다는 사실이다.

프랑스 대표팀의 결승전 선발 명단에는 골키퍼 말고도 세 명의 백인 선수가 더 있었다. 그런데 백인 감독(디디에 데샹)이 경기 도중 이들을 모두 흑인 선수로 바꿨다. 전체 인구 대비 5%도 안 되는 프랑스의 흑인들이 세계 최정상 국가대표팀을 ‘접수’하는 초유의 사건이 이렇게 완성됐다.

‘흑인팀 프랑스’가 주목받은 것은 이 나라가 자유(libert)와 평등(galit) 못지않게 다양성(diversit)을 핵심 가치로 추구해왔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광풍이 불어닥치기 훨씬 이전부터 정부 부처는 물론 웬만한 기업의 주요 간부진을 성(性)·종교·인종·출신 지역 등 기준별로 다양하게 구성해야 한다는 걸 불문율로 지켜온 나라다. 그런 프랑스가 흑인 선수 일색으로 월드컵 결승전 무대에 선 이유는 간단하다.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구성의 다양성 따위 형식 논리를 밀어냈다.

전문가들은 이 장면이 프랑스에 능력주의(mritocratie)의 새 문을 여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진단을 내놓는다. 기계적인 ‘다양성’의 틀에 갇혀 재능과 역량을 발휘할 기회를 갖지 못하거나 의욕을 잃는 사람들의 문제를 새로운 화두(話頭)로 던져줬다는 것이다.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프랑스에서 흑인 선수들이 ‘주류’로 발돋움하게 된 과정이다. 유소년 선수 시절부터 철저하게 실력만으로 경기 출전 기회가 주어지는 능력주의가 온몸을 던져 경기력 향상에 몰입하게 한다. ‘소수인종·약자 보호’를 적용해 적당히만 해도 출전 기회가 보장됐다면 음바페 같은 선수들이 나오지 못했을 수도 있다.

파란만장·다사다난했던 2022년을 보내면서 많은 국민에게 잠시나마 시름을 잊고 감동의 드라마에 젖게 했던 카타르월드컵에서 새겨야 할 메시지를 건져봤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시작된 올해는 그 여파로 인한 국제 에너지·곡물 파동에서부터 국내적으로는 5년 만의 정권교체와 인플레·금리·환율의 3고(高)가 몰고 온 경제 환경 급변 등 곡절이 참 많았다.

굵직한 국내외 사건에는 공통점이 있다. 통념의 벽을 깨뜨렸다는 점이다. 전 세계적으로 몰아닥친 인플레와 그에 따른 각국 중앙은행의 가파른 금리 인상 행진이 대표적이다. ‘세계의 공장’ 중국이 세계 경제무대에 진입하면서 수십 년간 지속된 글로벌 물가 안정 기조가 순식간에 무너지고, 오래도록 이어질 것만 같았던 초(超)저금리 시대가 일거에 반전할 것을 내다본 사람은 연초만 해도 많지 않았다. 미국 등 서방 진영과 중국·러시아 등 권위주의 진영 간 갈등이 군사·경제적 대결과 제재로 이어지면서 불거진 일이지만,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금언을 곱씹게 했다.

이런 상황 급변에 빠르게 대응하는 ‘회복탄력성’을 얼마나 갖췄느냐가 각국과 기업 성패를 좌우하는 시대가 왔다. 경직된 사고방식과 고정관념으로는 주어진 과제에 유연한 해법을 찾을 수 없다. 우리 사회의 활력을 저해해 온 보다 근본적 요인에 대한 성찰이 절실해진 이유다. 특정이념에 포획된 지난 5년간의 ‘탈원전’이 에너지 왜곡을 비롯해 ‘한전 사태’ 등의 문제를 일파만파로 일으킨 것처럼, 일방통행 정책과 정치가 우리 사회에 쌓아온 문제들을 차분하게 짚어볼 때가 됐다.

‘87 민주화’ 이후 정형화된 노동관계 법제가 정말로 ‘약자 보호’를 위한 것인지, “대세이니 따르라”는 ESG에 창의적 대응 여지를 없애는 과잉·과속의 문제는 없는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믿는 게 정말 최선인가”를 끊임없이 자문할 것을 2022년의 여러 일들이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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