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오스트리아 작가 페터 한트케의 장편소설 <어두운 밤 나는 적막한 집을 나섰다>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으로 재출간됐다.
책의 주인공은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약사. 그는 고독하고 건조한 일상을 보내다가 의문의 일격으로 실어증에 걸린다. 소설은 그가 집을 나선 뒤 스텝 지역(나무가 없이 풀만 무성한 평원 지역)을 떠돌며 온갖 기이한 일을 겪은 끝에 마침내 말을 되찾고 집에 돌아오기까지의 여정을 그린다. 그 여정은 현실과 환상,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가운데 감정을 배제한 언어에 실려 신중하고도 집요하게 가지를 뻗어나간다.
방랑과 기행, 풍자와 위트를 한데 버무렸다는 점에서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풍자소설 <돈키호테>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한트케는 난해하기로 소문난 작가. 독자들이 쉽게 내용을 따라가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말도 안 되는 사건들이 뒤죽박죽 엉켜 전개되는 가운데 독자는 길을 잃고, 이것이 현실인지 환상인지 혼란에 빠지게 된다.
주인공의 여정은 결국 자아의 변화 또는 자아의 성숙을 뜻한다. 이는 한트케의 문학 세계와도 맞닿아 있다. 작품 활동 초기 연극에서 기존 형식을 파괴하는 전위적 언어실험을 시도한 한트케는 1970년대부터는 전통적 서사로 옮겨가 자아의 내면 성찰에 집중해왔다. 다만 이 소설의 주인공은 미래를 지향하는 일반적 의미의 ‘발전’을 경험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발전 없는 발전소설’이라 할 수 있다.
1942년 태어난 한트케는 1966년 발표한 희곡 ‘관객모독’으로 이름을 알렸다. 배우들이 객석을 향해 욕설을 퍼붓고 조롱하는 등 기존 연극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을 깬 작품이다. 시와 소설, 시나리오도 열심히 썼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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