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긱스(Geeks) 기자들은 올 한 해를 되돌아보며 ‘뜨고 진’ 스타트업 대표들을 꼽아봤다. 좋은 성과로 주목받은 기업인도 많았지만 시장 침체와 함께 경영에 큰 어려움을 겪은 기업인도 적지 않았다.
다양한 분야에서 유니콘 탄생
올해도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사)이 여럿 탄생했다. 뜬 스타트업 대표 10명 중 4명이 유니콘 기업을 일궈낸 창업자다. 콘텐츠 플랫폼 업체 리디는 지난 2월 1200억원을 투자받으며 유니콘 기업에 등극했다. 국내 콘텐츠 플랫폼 스타트업으로는 최초다. 삼성전자 벤처투자팀 출신인 배기식 대표가 설립한 리디는 디지털 콘텐츠 플랫폼 '리디'를 운영하고 있다.
이승재 대표가 이끄는 버킷플레이스는 올초 유니콘 기업 반열에 올랐다. 인테리어 플랫폼 ‘오늘의집’을 운영하는 이 회사는 5월에 올 상반기 기준 국내 스타트업 가운데 최대 투자금(2300억원)을 확보하기도 했다. 기업가치가 1년6개월 만에 세 배 이상 급증했다.
자영업자 경영관리 서비스 ‘캐시노트’로 알려진 한국신용데이터(KCD)도 7월 유니콘 기업에 이름을 올렸다. 연쇄 창업자인 김동호 대표가 설립한 한국신용데이터는 국내 자영업자·소상공인 대상 경영관리 서비스 시장 1위 업체다. 최근 미국 결제·금융 서비스 기업 파이서브의 한국 지사 파이서브코리아를 인수하기도 했다.
농축수산물 데이터 전문업체 트릿지는 8월 기업가치 3조6000억원을 인정받으며 유니콘 기업이 됐다. 국내 농축수산물업계 최초로 유니콘 기업이 됐다. 트릿지는 자체 구축한 농산물 데이터 플랫폼 등으로 시장의 정보 비대칭과 비효율을 줄이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델몬트, 월마트, 카르푸, 호주 농림부, 싱가포르 식품청, 맥킨지 등 다양한 기업과 정부 기관이 주요 고객사다. 신호식 트릿지 대표는 “글로벌 공급망 붕괴, 애그플레이션(농산물 가격 급등) 등 여러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독점 기술과 혁신적 서비스로 글로벌 시장에서 성과를 낸 국내 스타트업도 있었다. 인공지능(AI)이 수학 문제를 풀어주는 교육 앱 ‘콴다’는 가입자 수가 10월 7000만 명을 돌파했다. 국내 스타트업이 만든 앱이 한국 인구수를 넘어선 것은 이례적이다. 국내 인터넷 서비스 중에서 네이버, 카카오, 크래프톤 등 일부 대기업만 가입자 7000만 명 이상을 확보한 앱을 운영 중이다. 콴다 운영사인 매스프레소는 인천과학고 동기인 이용재 대표와 이종흔 공동 창업자가 2015년 설립했다.
천정희 서울대 수리과학부 교수가 2017년 세운 크립토랩은 세계 최고 수준의 동형암호(同形暗號) 전문 기업이다. 동형암호는 정보를 암호화한 상태에서 데이터를 분석하는 기술이다. 그만큼 보안 수준이 높다. 글로벌 정보기술(IT) 업체 IBM이 올 3월 크립토랩의 기술을 자사 AI 소프트웨어에 적용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국내 토종 기술이 글로벌 표준을 주도할 발판을 마련했다는 의미가 있다. 크립토랩은 기술력을 인정받아 7월 시리즈A(사업화 단계) 투자에서 210억원 규모 자금을 유치했다.
한국 경제 혁신 이끈 스타트업들
전통 산업을 혁신한 다양한 스타트업도 올해 성장세를 보였다. 그린랩스는 농업 데이터 플랫폼 ‘팜모닝’을 운영한다. 농작법 자료, 정부 보조금, 농산물 경매 시세 등 농업 관련 정보를 제공한다. 올해 이용자 70만 명을 넘겼다. 국내 농가 규모(130만 가구)를 고려하면 전체의 절반 이상이 팜모닝을 쓰는 셈이다. 안동현 그린랩스 대표는 “농민들의 소득을 끌어올려 농업이 사양 산업에서 유망 산업으로 변할 수 있게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이용균 대표가 이끌고 있는 알스퀘어는 최근 주목받고 있는 프롭테크(부동산기술) 스타트업이다. 상업용 부동산 데이터를 전문적으로 모으면서 중개, 인테리어 사업 등도 펼치고 있다. 7월 기준 상업용 부동산 누적 거래액이 7조원을 돌파했다. 알스퀘어가 확보한 국내외 상업용 부동산 빌딩 수는 30만 개를 넘었다.
도넛 브랜드 ‘노티드’로 유명한 GFFG는 국내에서 보기 드문 외식 전문 스타트업이다. 식품·유통기업뿐만 아니라 금융, IT 등 다양한 분야의 기업과 협업해 MZ세대(밀레니얼+Z세대) 트렌드를 선도하는 업체로 성장했다. 이준범 GFFG 대표는 “성장 가능성을 인정받은 첫 번째 투자를 발판 삼아 해외에 첫발을 내디딜 준비를 하고 있다”며 “신사업 확대에 속도를 내겠다”고 했다.
네이버 최고기술책임자(CTO) 출신인 송창현 대표가 창업한 포티투닷은 국내 스타트업 업계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자율주행 전문 기업인 이 회사를 8월 현대자동차가 4200억원에 인수하면서다. 국내 대기업이 인수한 국내 스타트업 가운데 최고액이었다.
가상자산 뒤흔든 테라폼랩스
올해 이미지가 크게 구겨진 스타트업 창업가도 있었다. 암호화폐 테라·루나 발행사인 테라폼랩스의 권도형 대표는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 등으로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5월 테라·루나의 가치 폭락은 글로벌 가상자산 시장을 흔들어놓기도 했다. 한때 시가총액 50조원을 넘겼던 루나의 가치는 99% 이상 떨어지며 휴지 조각이 됐다.이두희 멋쟁이 사자처럼 대표도 가상자산 시장에서 곤욕을 치르고 있다. 그는 대체불가능토큰(NFT) 프로젝트 메타콩즈에 CTO로 참여했다. 하지만 프로젝트 운영 부진, 해킹 사건 등 악재로 메타콩즈의 가치는 급락했다. 다른 경영진은 이 대표를 횡령, 업무상 배임, 사기 등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업계 1위를 달리던 일부 스타트업은 올해 경영난을 겪기도 했다. 국내 배달 대행 1위 서비스 ‘부릉’을 운영하는 메쉬코리아는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해 올 상반기 대규모 인력 구조 조정에 나섰다. 하지만 창업자 유정범 의장은 추가 투자금을 유치하지 못해 지난달 법원에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구글코리아 출신인 이필성 대표가 창업한 스타트업 샌드박스네트워크는 최근 감원과 사업부 매각·축소에 나섰다. 국내 유명 유튜버를 다수 확보한 다중채널네트워크(MCN) 업체인 이 회사는 무리한 사업 확장에도 추가 투자 유치에 실패하면서 경영난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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