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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린더 부품 주문서 입력하니…기계끼리 소통해 '맞춤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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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주에 있는 인구 1만5000명의 소도시 발도르프. 이곳은 세계 각국 산업 관계자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세계 100대 기업 중 99곳을 고객으로 삼고 있는 독일 증시 시가총액 1위 기업 SAP 본사가 있어서다. 25개 산업군, 12개 업무영역의 기업용 소프트웨어 솔루션을 만드는 이 업체는 최근 공급망에 참여하는 모든 기업을 데이터로 잇는 비즈니스 네트워크 구축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달 발도르프 본사에 디지털 대전환(DX)을 위한 실증 공장 ‘인더스트리 4.0 팝업 팩토리’가 문을 열었다.

글로벌 제조업 주도권을 쥐기 위한 ‘DX 영토전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한국경제신문은 지난 15일 아시아 언론 최초로 ‘DX 격전’의 최선봉에 선 SAP의 인더스트리 4.0 팝업 팩토리를 찾았다. 약 500㎡ 공간에 로봇팔, 자율주행 로봇, 프로세스 제조 라인 등을 실제 스마트 공장 현장처럼 설치해 디지털 공급망이 작동하는 과정을 체험할 수 있도록 꾸민 전시장이다.

가상의 주문자가 된 기자가 SAP 커머스(전자상거래) 플랫폼에 접속해 실린더 부품 주문서를 입력했다. 개인 요구 사항으로 ‘The Korea Economic Daily’란 문구가 제품 카드에 반영되도록 요청했다. 주문을 마치자 가상 제조회사의 클라우드 전사적자원관리(ERP) 소프트웨어 화면에 주문 사항이 입력됐고, 실증공장에 설치된 로봇팔 제조라인이 부품 조립을 시작했다. 이어 인공지능(AI)의 머신비전 검사까지 마친 실린더 부품 최종 생산품이 자율주행 로봇에 실려 창고로 운반됐다. 다른 한편에선 레이저 각인기에서 기자가 요구한 문구를 금속 카드에 각인하는 공정이 동시에 진행됐다. 이 모든 과정은 작업자의 개입 없이 기계끼리 데이터를 주고받으며 자동으로 이뤄졌다.

SAP가 수년에 걸친 준비 끝에 지난달 야심차게 공개한 ‘인더스트리 4.0 팝업 팩토리’는 막연하기만 한 제조 현장의 DX를 체험할 수 있도록 만든 실증 공장이다. 이 공간은 클라우드 ERP 소프트웨어, 디지털 매뉴팩처링 클라우드 등 디지털 공급망의 핵심 소프트웨어 솔루션이 제조 현장에서 작동하는 모습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미국과 중국(G2), 신흥국 사이에 낀 ‘넛 크래커’에서 디지털 대전환이란 승부수로 제조 강국의 명성을 되찾겠다는 독일 산업계의 결기가 투영된 공간이란 평가다.

인더스트리 4.0 팝업 팩토리는 주문부터 제조, 물류 등 공급망 전체를 아우르는 ‘개인 맞춤형 생산’ 과정을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곳에 마련된 프로세스 제조(레시피에 따라 재료를 결합하는 생산 방식) 실증 공장도 개인 맞춤형 음료가 생산되는 과정을 시연했다. 현장 관계자가 화면에 임의로 비율과 색상을 입력하자 모터가 굉음을 내며 실린더 색소를 배합기로 밀어내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최종 생산품에 맞춰 코드를 일일이 입력해야 했는데, 코드를 최소화하는 ‘로(low)코드’와 코드 입력이 필요 없는 ‘노코드’ 플랫폼이 개발되면서 화학 및 제약, 소비재 등 프로세스 제조 분야에서도 개인 맞춤형 생산이 가능해졌다는 설명이다.

이 같은 맞춤형 제조는 대량 생산 시스템에선 실현하기 어려웠다. 개인화된 주문에 따른 크고 작은 재료와 공정의 변화가 생산성을 크게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지목됐기 때문이다. 정보기술(IT)과 제조업의 융합은 이 같은 제약을 빠르게 허물고 있다. 원자재부터 주문, 생산, 물류 등 공급망 전체가 데이터 클라우드를 통해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주고받고, 고도화된 자동화 설비가 생산효율을 뒷받침해준 덕분이다. 대량 생산 비용만으로 개인 맞춤형 생산이 가능해지는 만큼 소비 패러다임도 머지않아 완전히 뒤바뀔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SAP는 클라우드와 ERP 소프트웨어를 연동한 지능형 자산관리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가상 공간에 실제 제조 현장과 똑같은 디지털 트윈을 만들어 머신러닝과 인공지능(AI) 분석을 통해 제조 설비를 예지보전하는 게 대표적인 기능이다. 현장 관계자는 “모든 공정이 디지털 문서로 기록되고 디스플레이에 시각화되기 때문에 원격으로도 제조 현장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이슈 관리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거세지는 DX격전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 SAP는 자사 솔루션을 사용하는 기업을 연결하는 비즈니스 네트워크 구축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기업끼리 데이터를 공유해 정보 비대칭으로 인한 비효율을 최소화하고, 데이터를 활용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하도록 지원하는 게 목표다. 독일, 미국, 일본 등의 자동차 회사 128개가 참여하는 데이터 생태계 구축 프로젝트 ‘카테나 엑스(X)’가 그런 사례다.

도미니크 메츠거 SAP 디지털공급망 총괄 수석부사장은 “고객사가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원활하게 협업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발도르프=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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