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 경제성장률 1%로 추락
지난 16일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고령화와 포퓰리즘 등으로 인해 선진국의 장기 경제 성장률은 하락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선진국으로 분류한 40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2000~2020년 연평균 1.1%에 그쳤다. 1980년부터 2000년까지 20년 동안 1인당 GDP 증가율인 2.25%에 크게 못 미친다.고령화에 따른 생산인구 감소는 소득 감소로 이어진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이전소득 등 복지 확대는 연금 지출을 늘리고, 인프라와 교육 등 성장을 위한 투자 여력을 축소시킨다. 이는 장기적인 성장 정체를 낳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 같은 저성장은 심화하고 있다.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에도 선진국의 GDP 증가율은 2% 미만에 머물렀다. 영국은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GDP 증가율이 연평균 1%를 밑돌았다. 세계 GDP의 중위값 이상을 달성하고 있는 국가들의 1인당 GDP 증가율도 2027년까지 연평균 1.5%에 그칠 전망이다. 캐나다, 스위스 등은 0%에 머물 것이란 관측이다. 한국도 내년 1%대로 떨어진 뒤 10년간 장기 둔화할 것이란 예상이다.
이는 20세기와 대조된다. 20세기엔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가 세계 경제 성장을 이끌었다. 숙련 노동자가 시장에 쏟아졌고 여권(女權) 신장으로 여성 노동력도 증대됐다. 세계화로 무역량도 큰 폭으로 증가했다. 경제 성장을 통해 삶의 질이 극적으로 개선됐다.
이후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성장을 위한 개혁보다 복지를 위한 정책이 쏟아졌다. 독일 매니페스토 프로젝트에 따르면 1960년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9개 회원국 주요 정당이 내건 공약 중 경제성장과 복지 등 반(反)성장 공약 비중은 각각 10% 수준이었다. 하지만 2021년 성장 공약 비중은 10% 미만으로 떨어졌다. 복지 공약 수는 60% 이상 증가해 전체 공약의 30%를 차지했다.
미 의회 예산처에 따르면 1979년 미국 소득 하위 20% 계층은 세전 소득의 30%를 정부로부터 지원받았다. 하지만 2018년 기준으로 60%가량을 정부에 의존하고 있다.
고령화→복지 포퓰리즘→성장 정체
각국 정부가 성장보다 복지에 초점을 맞추게 된 배경엔 급격한 고령화가 있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경제 성장 정책은 일반적으로 연금 수급 세대보다 숙련 노동자에게 더 많은 혜택을 준다. 은퇴한 고령층이 불어나자 정치인들은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반성장 정책을 앞세우기 시작했다.그 결과 고령층을 위한 의료비 지출은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OECD에 따르면 회원국의 1인당 의료비 지출은 매년 3% 증대되고 있다. 2018년 GDP의 9%에서 2030년 10%까지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다. 반면 연구개발(R&D)에 대한 정부 지출은 1980년대에 비해 약 30% 줄었다.
한국의 GDP 대비 의료비 비중도 1980년대 3.5%에서 2020년 8.4%까지 크게 늘었다. 반면 2020년 정부의 R&D 지출 비중은 4.8%대에 머물렀다.
이코노미스트는 “각국 정부가 대규모 기반 시설 건설, 초등 교육 확대 등 성장 촉진 정책에는 지출을 줄이고, 노인 연금 증대, 의료보험 활성화 등에 과도하게 몰두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지원금을 살포한 탓에 국가부채가 급증한 것도 각국 정부가 성장을 위한 투자에 소극적인 이유로 꼽힌다. 이코노미스트는 “경제 성장을 위한 구조적인 개혁 정책이 필요하다”며 “자유 무역 확대, 건축 규제 완화, 조세·연금 개혁 등이 이뤄지면 1인당 GDP 증가율을 0.5%포인트씩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