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금융위원장이 은행들의 자금 확보 경쟁이 과도하다며 예금금리 인하를 권고하자 금융당국의 정책 혼선에 대한 비판이 거세다. 예금금리 인하는 은행의 예대금리차를 높이는데 지난 6월 금융감독원장은 은행들의 ‘지나친 이익 추구’를 비판하며 높은 예대금리차를 문제 삼은 바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은행들의 예금금리 인상 경쟁이 불붙은 배경은 레고랜드 사태 이후 채권시장 자금 경색에 대한 금융당국의 처방과 무관치 않다. 채권시장에서 회사채 발행이 어려워지자 금융당국은 우량 채권으로 회사채보다 수요가 많은 은행채 발행을 제한했다. 그럼에도 회사채 발행이 어려워진 기업들은 은행 대출로 몰렸고 은행들은 은행채 상환, 기업 대출 등을 위한 추가 자금 확보 필요성이 커졌다. 은행채 발행이 막힌 은행들이 예금금리를 높여 예·적금 확보 경쟁에 나선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그러나 예금금리 상승으로 은행으로 자금 쏠림 현상이 나타나면서 은행보다 안정성이나 편의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제2금융권의 자금조달이 어려워졌다. 여기에 예금금리 인상으로 은행의 자금조달 비용이 증가하면 대출금리도 추가 상승할 것이란 우려까지 불거지면서 금융당국은 은행에 예금금리 인하를 권고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금융당국의 예금금리 인하 처방은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한다. 은행채 발행과 예·적금을 통한 자금조달이 모두 막힌 은행들의 유동성 여건이 악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시중 4대 은행의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은 지난 10월 모두 100%를 웃돌았지만, 11월엔 평균 90%대로 하락했다. LCR은 향후 1개월간 순현금유출액 대비 고유동성자산 비율로 이 비율이 하락할수록 은행이 자금 유출 등 위기 상황을 견딜 수 있는 유동자산이 감소한다는 의미다. 은행의 유동성이 악화하면 은행 대출에 의존하는 기업의 자금난이 가중될 뿐만 아니라 경기 침체로 대출이 부실화할 경우 은행들의 부실화 가능성도 커진다.
더 근원적인 문제는 금융당국이 시장가격인 금리에 개입해 자원 배분을 왜곡한다는 점이다. 금리상승기에는 가계 및 기업 대출의 채무불이행 위험이 커지므로 은행은 예금금리보다 대출금리를 더 높여 잠재적 손실 증가에 대비한다. 이때 금융당국이 예대금리차 축소를 요구하면 은행의 손실이 커져 주주에게 피해가 돌아간다. 금리상승기에 은행의 예금금리 인하를 유도하는 정책 역시 금융소비자가 누려야 할 이자소득 증가를 막아 자원 배분을 왜곡한다.
더욱이 이런 금융당국의 행태는 한국은행의 금리 인상 정책의 효과를 낮춘다. 금리가 오르면 가계 소비와 기업 투자가 감소하면서 물가 상승 압력이 낮아져 인플레이션이 잡힌다. 또한 금리 인상은 가계의 이자 비용 부담을 늘려 가계대출을 줄인다. 사상 최고치를 연이어 경신하며 한국 경제의 뇌관으로 꼽히던 가계대출은 지난 3분기 말에 지난해 말보다 3000억원 가까이 감소했다. 하지만 금융당국이 금리를 규제하면 통화정책의 파급경로가 차단돼 물가안정 달성 시점은 지연되고 가계의 디레버리징(부채 축소)에도 차질이 생긴다.
금리인상기에 필요한 금융당국의 역할은 금융회사들이 위기 상황을 견딜 수 있도록 자기자본과 유동자산 확충을 유도하고 신용경색 조짐을 조기에 발견해 적절한 유동성 조치를 취함으로써 금융안정을 도모하는 것이다. 금융당국의 금리 규제는 부작용을 낳을 뿐 금융안정의 해법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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