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사장 시대.’ 올해 10대 그룹 임원인사를 대표하는 키워드 중 하나다. 50~60대 남성이 대부분이던 10대 그룹 사장·최고경영자(CEO) 명단에 여성 여러 명이 이름을 올린 것은 이례적이다. 대기업에 팽배하던 유리천장이 본격 깨지는 원년이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18일 산업계에 따르면 올해 10대그룹 사장·CEO 승진자 중 여성은 총 5명이다. 오너가 출신이 아닌 4대그룹 첫 여성 CEO에 오른 이정애 LG생활건강 사장이 대표적이다. LG생활건강은 지난달 24일 이 부사장을 사장 승진과 동시에 신임 CEO로 내정하면서 ‘여풍(女風)’ 물꼬를 텄다. 삼성전자는 지난 5일 인사에서 이영희 글로벌마케팅실장 부사장을 사장으로 승진시켰다. 삼성전자에서 여성 사장이 나온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유통업계에선 여성 CEO가 여러 명 나왔다. LG그룹 광고 지주회사인 지투알의 박애리 전무는 부사장으로 승진하면서 CEO에 올랐다. 김혜주 롯데멤버스 CEO(전무)와 이선정 CJ올리브영 CEO(경영리더)도 각각 대표로 내정됐다.
특히 이영희 사장과 김혜주 CEO는 ‘외부 출신’이라는 점에서 업계가 주목했다. 이 사장은 부레오버넷코리아, 유니레버코리아, 로레알코리아 등 외국계 기업에서 마케팅을, 김 CEO는 삼성전자, KT, 신한은행 등 여러 분야에서 빅데이터를 다뤄왔다. 산업계 관계자는 “능력만 있다면 누구든 중책을 맡긴다는 대기업 인사 기조를 보여주는 대표 사례”라고 분석했다.
10대 그룹 여성 CEO 5명 중 4명은 전략 분야가 주특기로 꼽혔다. 빅데이터 분야 ‘기술통’인 김혜주 CEO를 제외한 4명은 모두 각 기업의 대표 전략통으로 알려졌다. 이정애 사장은 1986년 LG생활건강 공채로 입사한 뒤 생활용품 마케팅 분야에서 꾸준히 활약했다는 후문이다. 헤어케어, 바디워시, 기저귀 등 맡는 제품마다 마케팅 차별화로 주목받았다는 평가다.
산업계에선 올해를 기점으로 여성 사장·CEO의 존재감이 커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2025년부터는 자산 2조원 이상 국내 기업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공시가 의무화되기 때문에, 여성 임원 비중도 점진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관측된다.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